1) 프롤로그
지난 2018년 1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이 올해 햇수로 5년째다. 매주 한 꼭지씩 빠짐없이 쓰다 보니 어느새 199번째 원고까지 왔다. 그간 달서구·달성군에 산재한 많은 문화유적을 살펴보았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자연환경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건축물이었다. 불교 건축인 사찰, 유교 건축인 서원·정려각, 문중 건축인 재실·세거지 등등. 이번에는 지난 시간을 정리도 하고, 앞으로 살펴볼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도 넓힐 겸 우리 전통건축물 유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필자가 전통건축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배웠던 키워드가 있다.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2)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우리 전통건축과 서양건축에 있어 가장 큰 차이는 건축 재료다. 서양건축이 돌을 주재료로 하는 석조건축이라면, 우리 전통건축은 나무를 주재료로 하는 목조건축이다. 이런 차이는 그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우리로서는 나무와 흙이 건축의 주재료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대표적으로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등이 있다. 이는 건축물의 용도에 따른 구분으로 전통건축물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다.
○ 궁(宮)
왕조국가시대에 왕의 거처와 국정을 집행하는 관청들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전체 규모가 100칸을 훨씬 넘는 대규모 건축물로 흔히 궁궐·궁전·대궐이라 부른다.
○ 전(殿)
전통건축물 중에서 격이 가장 높은 건물이다. 왕이나 대신(大神)이 머무는 곳으로 규모 역시 크고 웅장하다. 조선시대 국왕의 정전인 근정전, 공자를 모신 대성전,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등이 해당한다.
○ 누(樓)
기둥을 세워 건물 바닥을 높이고, 높인 건물 바닥에 마루를 설치한 2층 형태 건축물이다. 대체로 지대가 높고 경관이 좋은 곳에 세웠다. 다른 말로 누각·누옥·누관·누대·대각·층루라고도 한다. 누와 비슷한 것으로는 누문이 있다. 1층은 출입문, 2층은 마루로 사용하는 건물로 구지면 도동서원 수월루, 현풍읍 원호루 등이 있다.
○ 정(亭)
잠시 머물면서 자연을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건립한 작은 규모의 건축물이다. 벽 또는 창을 갖춘 형태도 있고, 벽 없이 사방이 툭 트인 형태도 있다. 정자라고도 하고 누와 합쳐 누정이라고도 한다. 하빈면 하목정과 태고정, 구지면 이로정, 현풍읍 대양정, 다사읍 영벽정 등이 있다.
○ 대(臺)
높은 지대에 흙이나 돌 등을 쌓아 사방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단, 혹은 누정 형식의 건물이다. 화원읍 화원동산 상화대, 현풍읍 쌍계리 치마거랑 마을 풍영대 등이 있다.
○ 당(堂)
일반적으로 방과 대청 같은 주거형식을 모두 갖춘 건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별당이 있는데 이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본체에 별도로 딸린 건물이다. 그런데 다른 유형도 마찬가지지만 ‘누·정·대·당·재·사·헌’ 등은 그 구분이 무 자르듯 정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하빈면 파회마을 삼가헌에 있는 하엽정은 정자도 되고 별당도 되고 서당도 된다. 또 인근에 있는 하목정 역시 하목당도 되고, 하목정도 되기 때문이다.
○ 재(齋)
용도가 무척 다양한 건물이다. 크게 구분하면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공부방이나 기숙사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다. 주로 성균관·향교·서원 등의 동재·서재처럼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현풍향교나 도동서원의 동·서재가 해당한다. 둘째는 적당한 터에 집을 짓고 한가롭게 거처하거나 교육공간으로 사용하는 예다. 월암동 달암재, 화원읍 동계재 등이 있다. 셋째는 제사를 앞두고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히 하는 재계, 또는 제사를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예다. 유가읍 경충재, 구지면 낙고재, 하빈면 도곡재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유형의 재실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재실은 특정 인물을 추모하고 기리는 목적에서 건립되었다는 점이다.
○ 정사(精舍)
재와 기능이 중복된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재계나 제사보다는 거처나 강학에 좀 더 비중을 둔 건물이다. 화원읍 수봉정사, 낙동정사 등이 있다.
○ 헌(軒)
대청을 갖춘 큰 건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과거 행정구역인 군·현 등 고을수령이 사용하는 관아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넓은 대청과 창·처마를 갖춘 일반 개인집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창과 처마가 있는 집을 ‘헌’이라 하고, 큰 마루가 있는 집을 ‘청(廳)’이라고 한다. 하빈면 삼가헌, 금서헌 등이 있다.
○ 각(閣)
석축이나 단상 위에 높게 세운 건물로 건물의 격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의 격이 높다고 무조건 건물의 규모도 큰 것은 아니다. 정려·비·영정 등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정려각·비각·영각이나 사찰의 산신각처럼 소규모 건물도 많기 때문이다. 현풍읍 현풍곽씨12정려각, 구지면 도동서원 한훤당선생신도비각, 옥포읍 충주석씨 영정각, 달서구 대곡영각 등이 있다.
○ 묘(廟)·사(祠)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이다. 문묘·사당·사우·묘우라고도 한다. 현풍향교 문묘, 하빈면 육신사와 전양군 불천위사당, 유가읍 예연서원 충현사 등이 있다.
3) 에필로그
‘궁·전·누·정·대·당·재·사·헌·각·묘’. 필자는 전통건축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배웠던 이 키워드를 아직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키워드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누·정·대·당·재·사·헌·각·묘’보다는 각기 그 앞에 붙는 당호(堂號)·헌호(軒號) 두서너 글자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통건축물 관련해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재실’의 맞춤법 문제다. 의외로 ‘재실(齋室)’을 ‘제실(齊室)’로 표기하는 예가 많다. ‘○○재(齋)’를 ‘○○제(齊)’로 표기하는 식인데, 인터넷 글에서는 자주 볼 수 있고 가끔씩은 문화재 안내판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 지역에는 공식적으로 ‘○○제(齊)’로 표기하는 재실이 한 곳 있다. 대구에서는 유일하고 필자 생각에 전국에서도 유일하지 싶다. 달성군 다사읍 주곡리에 있는 전의이씨 주곡 숙연제 문중 재실인 숙연제(肅然齊)다. 문중 설명에 의하면 숙연제는 예로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써왔기 때문에 후손들도 선조의 뜻을 따라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