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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92. 도동서원 ‘감’, ‘증반소’, ‘고직사’
  • 푸른신문
  • 등록 2021-11-18 13: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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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이름값 한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 됐든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건 그만큼 지니고 있는 유·무형 자산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도동서원이 그렇다. 필자는 지난 13일과 14일 토·일 양일간 단체손님을 모시고 도동서원을 찾았다. 13일도 그랬지만 14일은 정말 무슨 ‘벚꽃장날’을 연상시킬 정도로 도동서원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지 서원 앞 왕복 2차선 도로가 마비, 결국 경찰차가 출동해 막힌 길을 뚫었다. 이처럼 11월 초·중순경 도동서원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은행나무 단풍을 보기위해서다. 그런데 도동서원을 찾는 많은 이들 중 99%는 못 보고 그냥 가는 것이 있다. 아니 도동서원에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이번에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바닥이 아닌 담장에 설치된 도동서원 감

2) 전국 서원 중 유일, 담장에 설치한 감(坎)
향교·서원에는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향교에서는 문묘 혹은 대성전이라 하고[문묘는 대성전·동무·서무를 통칭하는 표현이며, 대성전은 문묘에 있는 이들 건물 중 주 건물인 정전을 말한다], 서원에서는 통상 사우[사당]라 칭한다. 그런데 향교의 대성전이나 서원의 사당 건물 서쪽[건물을 마주보았을 때 왼쪽] 바닥을 잘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닥에 작은 구덩이 같은 시설물이 있다. 이 시설물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크기는 초코파이 상자만 하고. 모양은 주로 사각형이 많고, 재질은 대부분 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립형이 아닌 작은 항아리나 기와 등을 땅 위에 그냥 놓아 둔 예도 있다. 이런 시설물을 ‘감(坎)’이라 한다.
일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마지막에 지방과 축문을 태우는 절차가 있다. 이를 ‘소지방 분축문’이라 한다. 향교나 서원 제사에도 이와 똑같은 절차가 있다. ‘망요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반 가정에서는 ‘향로’에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르고, 향교나 서원에서는 ‘감’에다 ‘폐백’과 ‘축문’을 불태운다는 점이다. 여기서 폐백은 신에 올린 선물, 축문은 신에게 고한 글을 말한다. 그런데 도동서원에서는 사당 건물 좌우 바닥을 아무리 살펴봐도 감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것일까? 이유는 도동서원 감이 바닥이 아니라 담장에 있기 때문이다. 정면에서 사당을 바라봤을 때 좌측 담장 중간 높이쯤에 감이 있다. 어떤 이유로 감을 담장에다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전국 향교·서원 중 바닥이 아닌 담장에 설치된 감은 도동서원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동서원 전사청인 증반소

3) 전사청의 또 다른 이름, 도동서원 증반소
담장에 설치된 도동서원 감은 서원답사를 전문적으로 다니는 답사꾼 정도는 돼야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도동서원에는 이들조차 잘 모르는 공간이 한 곳 있다. 감처럼 작은 시설물이 아니라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번듯한 건물임에도 잘 모르는 공간이다. 한마디로 도동서원 방문자 99%가 모르는 공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접근 자체가 힘들고 설령 근처까지 갔다 해도 사전 정보가 없으면 모르고 그냥 돌아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증반소(蒸飯所)’라는 건물이다.
증반소를 가기위해서는 문을 세 번이나 통과해야 한다. 먼저 외삼문과 내삼문을 통과한 후, 사당을 마주보고 섰을 때 동쪽 담장에 나있는 작은 쪽문을 통과해야 증반소가 있다. 대부분 서원은 평소 사당 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을 잘 개방하지 않는다. 신을 모신 공간이기에 향사, 분향례 같은 의례를 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문을 잠가두기 때문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내삼문 들어가기도 힘든데, 내삼문을 지나 또 하나의 문을 더 통과해야 증반소가 있으니 증반소 보기란 정말 하늘에 별따기다.
도동서원 증반소는 쉽게 말해 여타 다른 서원의 전사청이라고 보면 된다. 전사청은 제사 준비와 관련된 공간이다. 제기를 보관하고 제수를 장만하고 최종적으로 제수를 제상에 진설하기 전, 제물이 담긴 제기를 잠시 두는 곳이다. 대부분 향교·서원은 이런 용도의 건물을 전사청이라 부른다. 그런데 도동서원은 예로부터 전사청이 아닌 증반소로 불렀다. 증반은 ‘찔 증’, ‘밥 반’, 밥을 찐다는 뜻이다.
향교의 석전대제, 서원의 향사 같은 제사에서는 곡물류를 익히지 않고 생으로 그대로 올린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이곳 도동서원과 함양 남계서원은 곡류를 생으로 올리지 않고 고두밥을 지어 올린다. 과거 도동서원에서는 이곳 증반소에서 고두밥을 지었다. 그래서 아마도 증반소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참고로 규모가 크지 않은 소규모 서원은 독립된 전사청 건물이 없는 곳이 많다. 이런 서원에서는 서원지기가 거처하는 고직사를 전사청 용도로도 사용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9개 서원 중 독립된 전사청 건물이 없는 서원은 무성서원이 유일하다. 현재는 도동서원도 제반여건상 증반소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향사 때가 되면 고직사를 증반소[전사청]로 사용하고 있다.

4) 요즘 학교의 행정실·급식실·세탁실, 고직사
조선시대 서원은 지금의 학교제도로 보면 ‘기숙형’ 사립중고등학교[혹은 사립대학교] 쯤 된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등·하교 없이 서원에서 숙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원에는 원생의 기숙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부속공간이 있었다. 바로 고직사[교직사·주사·주소]다. 고직사는 서원에 딸린 노비들이 원생의 식사와 빨래를 비롯한 기타 서원 잡일을 했던 공간이다. 고직사 건물은 대체로 일반 민가와 비슷한데 방, 대청, 부엌, 창고, 마당 등으로 구성됐다. 특이한 것은 고직사가 노비들이 생활했던 공간이지만 서원 부속건물답게 초가가 아닌 기와지붕이었고, 전체적인 공간배치가 좌우대칭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산서원·옥산서원처럼 서원에 따라서는 고직사 건물이 두 채 이상이거나 고직사의 규모가 아주 큰 경우도 있다.

5) 에필로그
도동서원에서 해설사로 근무를 하다보면 ‘사당을 한 번 볼 수 없느냐’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서원의 사당은 산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신을 위한 공간, 즉 양의 공간이 아닌 음의 공간이다. 그래서 항상 고요하고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의례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런 상황에 변화가 있다. 전주향교 등이 유교문화 대중화를 위해 신들의 공간인 대성전을 1년 365일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주향교의 경우는 내삼문만이 아니라 대성전 문까지 완전히 개방해 위패를 모신 대성전 내부를 문 밖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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