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가난한 집안의 8남매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농이었지만 유정이 7살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2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난봉꾼인 형이 재산을 탕진하자 12세 때 서울 삼촌집에 올라와 휘문고보를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김유정이 기생이자 명창인 박록주를 만난 것은 휘문고보 4학년 때이다. 박록주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김유정은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박록주를 보고 한눈에 반하였다. 김유정은 박록주의 공연장을 자주 찾았으며 불타오르는 연정을 수차례의 편지를 통해 전달하였지만 번번히 거절당하였다. 어느날 막무가내로 박록주의 집을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는 김유정에게 박록주는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편지질이오?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한다는 말이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라고 훈계하여 돌려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김유정은 지독한 상사병에 걸렸으며 심지어는 혈서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도 죽기 약 3개월 전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기리며 『신곡』을 쓴 것처럼 그는 온 힘을 다해 한 여인에게 보내는 서간 『병상의 생각』을 쓰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가 술에 찌들어 사는 들병이 생활을 이어가다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박록주와 헤어진 지 8년 만인 1937년, 서른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때 록주의 나이는 서른 셋이었다.
김유정의 짧은 생애가 박록주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김유정이 박록주를 사랑한 것은 그녀가 김유정의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곱 살의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김유정은 평생 어머니를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마음은 미완성 장편소설「생의 반려」에 잘 나와 있다.
저에게 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 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 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땅에 없으니
어찌 하오리까
김유정의 박록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 가이없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랑’과 ‘그리움’이 있었기에 짧은 삶에도 불구하고 29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등 주옥같은 30편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