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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푸른신문
  • 등록 2021-02-19 1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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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皮千得, 1910∼2007)의 「인연」은 워낙 유명한 수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수필의 내용은 이렇다. 저자가 열일곱이 되던 봄 도쿄의 사회교육가 M선생 댁에 유숙(留宿)을 하게 된다.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아사코 세명 뿐이었고 아사코는 저자를 오빠처럼 잘 따른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과 꽃들이 많았는데 어느날 어린 아사코가 뜰에 핀 스위트피이 라는 꽃을 따서 화병에 담아 저자의 책상위에 올려주는데 그는 그 꽃을 아사코와 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저자의 손을 잡고 자신의 학교까지 산보를 간다. 아사코는 자신의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싣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준다.
저자가 공부를 마치고 도쿄를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저자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춘 후 자신의 손수건과 작은 반지를 이별 선물로 준다.
그 후, 십 삼사 년이 지나고 도쿄에 갔던 저자는 두 번째로 아사코를 만난다. 아사코는 성심 여학원 영문과 3학년 이었는데 그는 아사코의 모습을 ‘그 집 마당에 핀 목련꽃과도 같이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 같다고 묘사했다. 아사코도 매우 기뻐했으며, 저녁 먹기 전 성심 여학원으로 다시 산보를 가는데 아사코가 그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연두색 우산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본 후 “내가 영화 ‘셸부르의 우산’ 이라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 듯 하다” 라고 썼다.
그날 둘이서 밤늦게 까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울’ 등 문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가벼운 악수와 함께 헤어진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한국이 해방되었으며 6ㆍ25전쟁이 있었다. 저자는 아사코가 결혼을 하였을 것인가,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등 별별 생각을 하던 끝에 다시 도쿄를 방문하여 세 번째 아사코를 만난다. 아사코는 이미 미 군정에 복무하는 일본인 2세의 장교와 결혼하여 따로 사는데 아사코의 어머니 안내로 그 집을 찾아간다. 아사코의 집은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고 아사코가 어릴 때 자신이 사준 동화책 겉장의 집을 보고 아사코가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사코의 집에 들어서자 저자가 마주친 것은 ‘백합 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혼혈인이었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사코와 악수도 없이 절을 몇 번씩 하고 헤어진다.
저자는 수필의 말미에 이렇게 회고한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시간이 흘러 93세의 저자가 KBS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했을 때 대학시절 아사코의 사진을 보여주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사코가 현재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데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그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살아 있다는 소식 만으로도 기쁨을 줍니다. 아∼ 살아 있군요” 라고 감정을 절제했다. 그런 그도 녹화가 끝난뒤 “사진을 나중에 받을 수 있겠느냐?” 며 오래전의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에게 젊은 날의 아사코는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단념해야 했던 인연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쓴 많은 수필에서 아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딸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아마도 아사코에 대한 여운이 그의 가슴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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