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부터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 노래 ‘테스형’은 힘든 세상을 한탄하는 듯 하지만 삶의 포기가 아니라 극복을 노래하고 있고 삶을 끌고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은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면서, 도덕적·양심적인 행동, 그리고 실천하는 지식을 강조하면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러나 테스형의 노랫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누구인지, 또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것은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현명하게 사는 것인지를, 어떤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에도 소크라테스는 우리 곁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농담처럼 ‘니 꼬라지를 알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현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데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즉 ‘꼬라지를 알아라’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고, 정성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누군가는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은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남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더 많은 힘을 가졌을 때 생긴다. 자신을 알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 그리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위세를 떨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불행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식이라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이 잘 나서 그리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다른 사람만 탓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새해는 부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해가 되면 좋겠다.
변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