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세상이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가을 단풍은 도심과 교외 구분이 없다. 예전에는 이 맘 때면 단풍으로 유명한 산을 찾아 단풍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명산을 찾는 단풍놀이를 그만 뒀다. 북적대는 차량과 사람의 공해도 싫었지만, 가까운 도심공원에서 즐기는 단풍놀이가 훨씬 좋아졌기 때문이다. 도심공원에서 즐기는 단풍은 명산에서 즐기는 단풍보다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단풍 빛깔과 공기 내음에서 가을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단풍 중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백미다. 붉은 빛깔 단풍잎과 함께 가을 단풍을 대표하는 노란 은행나무 단풍. 이번에는 우리 고장에서 멋진 황금빛 단풍을 만날 수 있는 은행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2) 400년 도동서원 은행나무
도동서원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의 랜드마크, 400년 은행나무. 어떤 이는 이 은행나무를 가리켜 도동서원 교목(校木)이라고 한다. 서원이 조선시대 사립중등교육기관인 학교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어떤 이는 교목(敎木)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가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서원의 교목이자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된 것은 유래가 있다. ‘행단(杏壇)’ 혹은 ‘행단강학’이란 고사성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행단은 중국 산동성 곡부현 공자묘[사당]에 있는 단이다. 공자는 젊은 시절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요즘으로 치면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노년에는 정치를 떠나 고향 노나라 곡부로 돌아와 저술활동과 제자양성에 전념했다. 이 때 공자가 큰 은행[혹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과 수업했다 해서 행단강학이란 고사성어가 만들어졌다. 이 고사 『장자』 「어부」에 나오는 ‘공자가 행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국 공자묘 행단에 심겨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가 아닌 살구나무라는 것이다. 이는 ‘행(杏)’을 은행나무로 인식한 우리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살구나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 「행단」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금 행단이란 북송 인종 건흥 연간[1022년]에 공자의 45세손인 공도보가 조묘(祖廟)를 증수하고 벽돌로 단을 만들고 그 둘레에 살구나무를 심었는데, 여기에서 행단의 이름을 취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그릇되게 인식하고서는, 곧 공자의 사당 뒤편에 은행나무를 벌려 심어 행단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은행나무는 압각수(鴨脚樹) 또는 평중목(平仲木)이라 한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도동서원 사액[1607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한강 정구 선생께서 심은 것으로 전한다. 대부분 은행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데 비해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가지를 좌우로 넓게 벌린 특징이 있다. 또 나무둘레가 400년 수령에 비해 상당히 큰데 이는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질 때문이라고 한다. 단풍도 타 지역에 비해 늦어 매년 양력 11월 10~15일 경 절정에 이른다.
3) 비탈에 외로이 서 있는 송담서원 은행나무
도동서원에서 구지방향으로 차로 2~3분쯤 가다보면 좌측으로 도동2리가 있다. 이 마을 뒤편 산 중턱에 대암 박성을 제향한 송담서원이 있다. 이 서원 초입에도 거대한 은행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키만 보면 도동서원 은행나무보다 더 커 보인다. 그런데 밑둥치를 보면 좀 다르다. 한 그루가 아닌 여러 그루 은행나무가 한데 엉켜 자라고 있다. 원줄기가 죽고 난 뒤 그루터기주변에서 다시 자란 나무들이다. 그냥 눈으로 봐서는 원 그루터기를 확인할 수 없어 정확한 수령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의 나무들은 수령이 대략 100~200년 정도쯤으로 추정된다.
4) 마을신 깃든 범안골 11가지 은행나무
대니산 남쪽 솔례마을 서편에 경주최씨 집성촌이 있다. 범안골·범항골 혹은 호항동(虎項洞)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호항동이란 말은 풍수적으로 보았을 때 마을 뒷산이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국이고, 마을은 호랑이의 목에 해당한다하여 ‘범 호’, ‘목 항’을 쓴 것.
이 마을 앞 도로 변에도 특이한 형태의 은행나무 노거수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 크기가 도동서원·송담서원 은행나무보다 더 커 보인다. 그런데 이 나무 역시 가까이에서 보면 송담서원 은행나무와 같은 유형임을 알 수 있다. 죽은 그루터기 주변에서 자란 여러 그루 나무들이 서로 엉키듯 성장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수령 200년으로 추정되는 11그루의 은행나무가 한데 모여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이 나무에는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여러 나무가 한 그루처럼 붙은 특이한 도로변의 은행나무는 원래 한 그루였다고 한다. 지금부터 200년 전 현풍곽씨 사당을 짓기 위해 은행나무를 벤 후 새순이 많이 나와 자랐다고 하므로 몇 가지인지 모른다. 1981년에는 11그루라고 적혀 있으나 자라면서 새순이 서로 엉켜 붙어 지금은 9그루이다. 높이 29m, 밑 둘레 11m(직경 3.5m), 수관 폭 22x22m 되는 나무 밑에는 인조목 탁자와 의자가 각각 2개 있고, 대리석 제단이 설치되어 동제를 지내는 당산목임을 알 수 있다. (달구벌 문화 그 원류를 찾아서Ⅱ, 차성호)
우리네 전통문화에는 목신(木神)을 섬기는 문화가 있다. 나이가 몇 백 년쯤 되는 나무에는 으레 목신이 깃들었다고 생각한 것. 범안골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향을 사르고 각각의 방식으로 치성을 드리는 탓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지금은 불공이나 제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5) 한훤당 종택 은행나무
현풍읍 못골[지리] 한훤당 김굉필 선생 종택 앞에도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노거수가 한 그루 있다. 높이 25m, 나무둘레 5m인 이 나무는 앞서 소개한 은행나무들이 모두 수나무인 것과는 달리 암나무다. 나무의 생장 상태가 좋아 과거에는 매년 5말 정도의 은행을 생산했다고 한다.
6) 에필로그
공룡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해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은행나무. 은행나무 관련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이른바 ‘성전환 은행나무’ 전설이다. 서울 성균관 은행나무, 거창 황산리 은행나무, 강화도 전등사 은행나무 등등. 본래는 암나무였는데 이러저러한 연유로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전설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성전환’이 아닌 노쇠에 따른 생식능력 퇴화로 설명한다. 그런데 필자가 근무하는 도동서원 해설사 부스 옆에 있는 작은 은행나무가 요즘 좀 이상하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이 맘 때쯤이면 많은 양의 은행알을 달고 있었는데 올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은행알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성전환 은행나무’ 전설이…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