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이다.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지 4년이 지난 1884년(59세)에 그린 그림이다. 대한민국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한 때 금석학(金石學)과 서화(書畵) 방면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추사가 죄인이 되어 유배지에서 외로움과 추위에 떨며 세상의 인심과 부와 권력에 대한 무상함을 느끼며 그린 것이다.추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변함없는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을 위해서이다.이상적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김정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을 구해서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이런 책들은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특히 ‘경세문편(經世文編)’이란 책은 더욱 그랬다. 어렵게 구한 책을 권력 있는 이에게 줄 수도 있었는데 이상적은 유배되어 아무 힘도 없는 추사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추사는 잘 나갈 때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변함없이 스승에 대한 도리를 지킨 이상적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을 썼다. 이 제목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또는 의역해서,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뜻이다.추사는 자신의 처지를 추운 날씨(歲寒)에, 제자 이상적의 의리와 절개를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松柏)에 비유한 것이다. 그 제자에 그 스승 자체도 멋지지만, 비유 또한 이 얼마나 멋진가!여기서, 내친김에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세한도는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그루, 그리고 집 한 채로 구성되어 있는 단순한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 우측 상단에 세한도(歲寒圖)라고 가로로 씌여 있다. 그 옆에 우선시상(藕船是賞)이란 글씨와 완당(阮堂)이란 김정희의 호를 세로로 쓰고 붉은 낙관을 찍었다.여기서 우선시상(藕船是賞)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우선(藕船), 이것을 감상해 보시게(是賞)’라는 의미이다. 우선(藕船)은 이상적의 호(號)이다.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붉은 낙관을 자세히 보면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글씨가 보인다. ‘오래토록 서로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추사의 이상적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세한도는 어찌보면 단순한 그림 같지만 사실 이렇게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