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동료

제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특공대 1개 분대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려는 차였다. 이때 한명의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분대원들은 사력을 다해 없어진 병사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결국 분대장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다음 작전에 차질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철수하기로 하였다. 그때 한 병사가 자신이 남아서 실종된 전우를 찾겠다고 하였다. 분대장은 내키진 않았지만 허락하였다.많은 시간이 흐른 뒤, 초초하게 기다리는 대원들 앞에 실종된 전우를 찾겠다고 남았던 병사가 혼자 돌아왔다. 분대장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 봐 애초부터 가망이 없던 일이었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병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나를 보더니 내가 꼭 찾아올 줄 알았다며 반가워하면서 그가 알아낸 정보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지금 비록 죽었지만 저는 그 친구가 저를 보고 반가워했다는 것에 대해 저의 행동이 후회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나머지 대원들을 숙연하게 했음은 물론이다.한바탕 전투를 치른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가 물을 찾았다. 소대장은 자신의 수통의 물을 건넸고 나머지 소대원들 전체에게도 한 모금씩 마시라고 했다. 전 소대원들의 입을 거쳐 돌아온 수통에는 당연히 약간의 물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수통의 물은 거의 그대로 들어 있었다. 소대원들은 자신이 갈증 난다고 물을 마셔 버리면 다른 전우가 못 마실 것을 염려하여 살짝 입만 대고 수통을 넘겼던 것이다. 동료가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위의 사례와 같이 서로 양보하고 약간의 손해를 본다는 마음자세로 임해야 한다. 소대장이 수통을 건넸을 때 병사들 각자가 자기만 생각하고 동료 전우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수통에 물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었겠는가?동료나 친구가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이와는 달리 자칫 잘못하면 불행의 씨앗도 될 수 있다는 사례가 있다.2012년 8월 퇴근길, 여의도 한복판. 믿기 힘든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전 직장동료 두명에게 칼을 휘두른 범인은 줄행랑 중에 다시 칼을 휘둘러 무고한 시민 2명을 추가로 상해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원한 관계에 의한 계획적 범죄라고 자백했다. 범인은 실직 후 4천여 만원의 카드빚을 진 상태였고, 체포 당시 지니고 있던 단돈 200원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신변을 비관한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가 ‘혼자 죽는 것이 억울하다’며 희생양을 정했다. 그가 정한 범죄대상은 이전 직장의 상사와 동료였다. 그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막은 한 신용평가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범인은 우수한 실적으로 3개월만에 부팀장으로 승진했지만 관리 책임이 커짐에 따라 실적이 나빠지고 동료들과의 불화도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범인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같은 직장에 다녔던 동료들은 특별히 따돌린 적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돌림이란 대체로 이렇다. 가하는 쪽은 기억할 수 없고 당하는 쪽은 잊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동료들과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 들이 있다. 누구나 우울한 말을 듣고 싶어 하거나, 비관적인 운명을 듣거나, 나쁜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농담으로라도 조롱하거나 비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 동료일수록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