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_木曜斷想] 비우고 채우며

책장 정리를 했다. 빛바랜 소설, 시집, 교양서, 어학사전 등등 책장에 잠들어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장 속에 있었음에도 먼지도 약간은 묻어 나왔다. 책을 읽으면 책에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먼지가 쌓일 정도로 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책들은 버리고 최근의 책들로 책장을 채웠다. 그래도 모아두면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될 것 같은 일부분은 책장에서 빼내 따로 모아두었다.
깨끗해진 책장을 새 책들로 채우니 상쾌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데 왜 헌 것에 집착했을까 싶었다. 헌 것에 대한 괜한 욕심 때문에 새 것을 채울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많은 반성이 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헌 것을 바리고 정리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정리수납사라는 직업이 생겼고 그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안을 대신 정리해 주는 내용을 다룬 TV프로그램도 관심을 끌고 있는데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버리기’와 ‘비우기’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쓸모없는, 또는 쓰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공간을 비우는 일이 정리의 첫 번째 단계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다. 비움은 채움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버리는 것은 새로움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버리는 것이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버리고 나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공간, 더 이상 없어보이던 공간도 보인다. 버림과 비움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갖는다고 한다.
풍요롭고 보람있는 미래를 위해서는 이전의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을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욕심, 특히 헛된 욕심은 꼭 버려야 하는데 욕심이 많을수록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면 평온이 찾아오고 배려가 생겨난다. 증오를 버리면 평화가 찾아온다. 비움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 삶 자체가 어쩌면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우고 채우는 가운데 삶의 가치를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을 비워 많은 사람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 분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곳간을 비운 분들, 이런 분들에 대한 칭송과 존경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변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