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 수확을 끝낸 논에 도구 쳐서(물을 뺀 논의 논도랑을 파는 것) 겨울잠을 자기 위해 숨어 있던 살찐 미꾸라지를 삽으로 퍼서 잡아내던 촌년의 DNA가 가득한 기자는 찬바람이 살살 부는 이맘때면 유독 추어탕이 그립다. 얼갈이배추와 대파, 토란대를 넉넉히 넣고, 삶아서 체에 거른 미꾸라지를 넣고 된장을 풀어 푹 끓인 추어탕을 먹고 나면 여름철 집나간 입맛이 돌아오고 더위에 지친 몸의 원기회복에 아주 좋다.
요 며칠 추어탕 생각이 간절했는데 반가운 연락이 왔다.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지만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사다가 삶는 게 좀 고약해서 안하게 되는데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께서 추어탕을 한 솥 끓이신 것이다. 등이 꾸부러진 팔순의 시어머니께서 미꾸라지를 사기 위해 오일장을 힘들게 가셨을 모습과 미꾸라지를 삶고 체에 거르는 그 일련의 고단한 과정이 눈에 선해 마냥 좋다고 날름 받아먹기가 송구스러웠다. 아닌게 아니라 양동이에 담긴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놓고 뚜껑을 닫아 놓았는데 소금이 따가워 팔딱거린 미꾸라지가 양동이 밖으로 탈출해 온 사방에 미꾸라지 천지라 그 미끌거리는 미꾸라지 잡아넣느라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는데 뭐라 대답할지 몰라 그냥 함께 웃을 수밖에. 매운 청양고추와 마늘을 다져 올리고 제피가루(산초)를 뿌리니 개운하고 구수한 추어탕이 어찌나 맛있던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추어탕은 지역에 따라서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경상도식은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체에 거르기 때문에 훨씬 깔끔하고 담백한데 비해 전라도식은 거르지 않고 으깬 미꾸라지를 그냥 넣기 때문에 좀 더 걸쭉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요즘은 추어탕 전문점도 많아 손쉽게 추어탕을 맛볼 수 있지만 내게 추어탕은 늘 향수를 불러 일이키는 음식이다.
시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추어탕을 먹고 나니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입안이 개운하면서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다. 마치 보약 한 그릇 먹은 기분이다. 일교차가 크고 기온이 뚝 떨어진 오늘 저녁, 뜨뜻하고 개운한 국물이 일품인 영양가득 추어탕 한 뚝배기 하실래예?
서순옥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