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서구 달성 토성마을이 시(詩)와 매화 향기로 깊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AI 시대 속에서, 시인의 손글씨와 한국적 미감이 어우러진 아날로그 예술 전시가 마을 한복판에서 펼쳐지며 지역 문화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토성마을은 지난 21일부터 2월 28일까지 마을 내 문화공간 ‘다락방’ 2층과 3층에서 ‘제1회 토성마을 육필시 43인전’과 ‘백천 서상언 화백 개인전–한글, 매화로 피다’를 동시에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서구도시재생센터와 토성마을협동조합이 후원하고, 육필시 사랑 모임(대표 김동원 대구시인협회 회장)이 주최·주관했다. 예술을 매개로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 43명이 참여해 컴퓨터 활자가 아닌,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간 육필 시 원고를 선보인다. 종이 위에 남은 필체 하나하나에는 시인의 호흡과 시간, 사유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왜 육필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작품 그 자체로 보여주는 전시다.
함께 열리는 백천 서상언 화백의 ‘한글, 매화로 피다’ 전은 전시의 미학적 깊이를 더한다. 절개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매화를 주제로, 한글 고유의 조형미를 결합한 작품들은 한국적 정서와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시와 회화가 교차하는 복합 예술 공간을 완성한다.
개막식은 기타 연주로 문을 열며 잔잔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행사에는 박수관 대구서구문화원 원장, 김동원 대구시인협회 회장, 박병규 생활문인협회 회장 등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와 문인, 주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전시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축사와 함께 시 낭송, 가곡 공연 등이 이어지며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문화 축제로 확장됐다.

특히 행사에서는 시인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고, 하모니카와 해금 등 다양한 축하 공연이 더해져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선사했다. 전시는 ‘보는 전시’를 넘어 ‘함께 호흡하는 전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이번 행사는 일회성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주최 측은 전시 기간 동안 토성마을을 찾은 시인들이 마을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창작한 시를 추후 ‘시화(詩畵)’ 작품으로 제작해 마을 골목 곳곳에 게시할 계획이다. 토성마을 전체를 하나의 ‘시화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토성마을협동조합 관계자는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마주하며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길 바란다”며 “토성마을이 문화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예술 마을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글씨 시와 매화, 그리고 골목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토성마을이 지닌 시간의 깊이와 사람의 온기를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지역 문화예술이 나아갈 또 하나의 방향을 조용히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