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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4)-상인2동]옛 모습은 노인의 기억 속에만…… 푸른신문 | 기사일자 [2010-03-11]


>>연재순서


두류2동  감삼동  신당동  상인2동  성당1동  죽전동  월성1동  상인3동  성당2동  장기동  진천동  송현1동  두류3동  용산1동  월성2동  송현2동  두류1동  용산2동  이곡2동  본동  본리동  이곡1동  상인1동  도원동

 


상인2동은…
인구 2만4천 여명. 면적 0.9㎢의 상인 2동은 주변 지역의 발전으로 월배로, 상화로, 월곡로 및 지하철이 위치해 있어 편리한 교통을 자랑한다. 대부분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고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1987년 주택정비 사업으로 지금의 형태가 갖춰진 후 변화가 많지 않다. 당시에 건축된 단독주택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상인 2동 주민자치센터는 지난 해 10월 29일 신축해 이전했다. 옛 건물은 1986년 건립되어 20년 이상 사용한 낡은 된 건물이었다. 신축한 자치센터에서는 일본어, 중국어, 뮤지컬 잉글리쉬, 한국 춤 등 다양한 주민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월촌고개는 산도둑 많아 해지면 인적 끊겨
달비천 선상지의 들판이 주택 밀집지역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상 상인 2동이지만 옛날 이름은 ‘도평마을’이었다. 지금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들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변화함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계획 아래 지명이 바뀌었다. 현재 단독 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 자리는 논과 밭이었다. 이곳은 앞산에서 내려오는 달비천이 평지를 만나 형성된 선상지로 땅이 척박해 논보다는 밭이 주를 이뤘다. 이런 대형 선상지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상인2동은 밭과 들, 그리고 언덕으로 기억된다. 땔 나무를 하러 가는 날에는 산을 2개씩 넘어야 했다.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들고 하루종일 산을 타며 나무를 했다. 지금 상인네거리 쪽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즐비해 바람이 불면 으스스한 소리가 났다. 가로등이 없던 시절, 캄캄한 밤은 더욱 무서웠다. 특히 월촌고개는 산도둑과 들짐승이 많아 해가 지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인구가 많아 주변에 여러 학교가 있지만 예전에는 월배보통학교가 이 부근에서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상인2동의 옛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상인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종옥(86)씨다. 그는 상인 2동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평생 이사를 딱 한 번 했는데 그게 598번지에서 597번지로 옮긴 것이었다. “이제는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그저 우리 노인들끼리 모여서 간혹 어릴 적 얘기를 할 때, 우리 기억 속에서 옛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거지.” 그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산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어.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마무리해야지.”라고 했다.   
  


“소년체전 2년 연속 우승기록은 전국에서 우리 학교뿐이에요”  
 
U-20 정지수 등 국가대표 선수 다수 배출
축구열기 식으면서 팀에 대한 관심도 줄어
축구교실 여는 등 여자축구 부흥 위해 노력

 

상인초등학교 여자 축구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99년 전국 10여개의 초등학교에서 여자축구팀을 창단했다. 대구에도 2곳의 초등학교에 여자축구부가 생겼다. 상인초등학교 여자축구부도 이때 창단됐다.
창단 멤버들은 3~4학년을 주축으로 25명이 뽑혔다. 이들은 여러 대회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2001년, 2002년 전국소년체전에서 연거푸 우승을 했다. 지금까지도 초등부 여자축구에서 소년체전 2년 연속 우승을 기록한 팀은 상인초등이 유일하다. 상인초등 여자축구부는 지금까지 전국대회 우승 6회 우승, 3위 9회 등의 성적을 거뒀다.
학교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합숙소를 마련하고 인조 잔디 축구장을 만들었다. 학부모들 역시 축구하는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축구선수의 꿈을 안고 여자축구부가 있는 상원중학교로 진학했다. 상인초와 상원중을 졸업한 학생들은 지금도 모임을 갖고 서로 소식을 전할 만큼 우정이 돈독하다.
현재 U-20여자국가대표에 상인초등학교 출신의 선수가 2명 포함되어 독일 U-20여자축구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U-17여자국가대표에도 7~8명이 선발되어 한국 여자 축구 미래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U-20여자국가대표의 골키퍼를 맞고 있는 정지수(22·위덕대)선수는 상인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유망주였다. 그는 지금도 휴가나 방학이 되면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2002 월드컵 이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축구 열기가 진정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인초등학교도 선수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지금은 주전 선수 11명 맞추기도 힘든 상황이다. 대회 우승에서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줄어들었다. 상인초등학교는 다시 한 번 여자축구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방과 후 특기적성 축구교실을 열어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더불어 학기별로 반별 축구대회를 열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1999년 창단부터 11년간 상인초등학교 여자 축구부를 지도해 운 김은태씨는 “상인여자축구부는 시합에서 지고 눈물이 흘려도 금방 이겨내는 밝고 건강한 아이들”이라며 “주위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옛날의 영광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항공대학이 있었다고요?


일제 강점기 때 비행기제작 기술자 양성
광복 후 경상공고의 전신인 항공대 설립
국산 1호 비행기 ‘부활호’ 복원과도 관련


1900년대 대구는 기계공학이 매우 발전해 있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은 대구의 발전된 기계공학을 비행기 만들기에 이용하려고 지금의 상인동 일대에서 비행기 제작을 하기 시작했다. 1943년 팔곡철공소를 상인동 273번지에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남자 100여명과 여자 30여명을 3개월간 교육하여 비행기 제작에 투입한 것이었다. 일제는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위해 2년 뒤 항공기술중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광복 후 1960년 대한항공대학이 설립됐고 그것이 지금의 경상기계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그 흔적은 항공대 자리 앞의 버스 정류장을 항대정류소라고 불렀을 만큼 깊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경상공업고등학교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한 국산 군용기 ‘부활호’가 남아 그 사실을 말해준다. 부활호는 1950년 개발하기 시작해 그해 10월 시험비행까지 성공했다. 부활이란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을 부활시키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공군은 60년까지 연습기 등으로 사용하던 부활호를 경상공고의 전신인 대한항공대에 기증했된다. 그 후 대한항공대가 폐교되고 경상공고가 개교하면서 부활호의 존재는 잊혀졌다.
1990년 사라져 버린 부활호를 찾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경상공고 지하창고에 뼈대만 남아있는 부활호를 발견 복원작업을 한다. 복원된 부활호는 현재 공군사관학교에 있으며, 경상공고에는 그 모형<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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