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노래와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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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3]
[편집자주]

오늘은 절기상 처서다. 입추가 지난지 보름째. 늦더위 속 가을이 덤성덩성 묻어나고 있다.
이곡동 배나무거리엔 60여그루의 배나무 마디마디마다 가을이 달렸고 옷가게 쇼윈도에는 가을 상품들이 맵시를 자랑하고 있다.
풍요로 치닫고 있는 가을문턱이지만 가슴 한 구석으론 애잔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을을 앞두고 각계각층 주민들로부터 가을이면 생각하는 노래와 사연들을 들어봤다.

▶박경애·김창옥씨
“올 가을에도 가을냄새 물씬 나는 꽃으로 꽃꽂이를 해야죠”
박경애씨(42·주부·본리동·사진 왼쪽)와 김창옥씨(48·강사·상인동)는 벌써부터 가을꽃들이 기다려진다. 박씨는 가을이면 가장 하고 싶은게 뭐냐는 질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고. 노래는 최진희의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를 잘 부른다고. 올림픽기념관에서 오랫동안 꽃꽂이 강사를 하고 있는 김씨는 노래는 자신이 없단다. 몇 년전 회원들과 함께 화왕산 갈대밭 여행이 인상깊었단다. 김씨는 꽃꽂이 회원들의 우의가 올 가을에도 돈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영환의장(45·달서구의회)
“가을이요, 9, 10월 의회에서 처리할 각종 안건들이 먼저 생각나는군요. 풍요의 계절답게 구민들에게 더 나은 생활기반을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업무외 가을이면 하고픈 일과 생각나는 노래, 사연에 대한 얘기거리를 주문하자 도의장은 “청소년 시절 어려운 가정사정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대학 만학도로서 가을학기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의장은 또 “노래실력은 어느 자리든지 뒤지는 편이 아니다”며 사색의 계절 가을에 기회가 되면 ‘안개낀 장춘당 공원’노래를 한곡조 뽑겠다고.


▶홍종흠 관장(60 ·문화예술회관)
문화 예술회관 전시실에서 마주친 홍종흠 관장에게 갑작스럽게 ‘가을이면 생각나는 노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기러기 울어에는∼’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또 조용필의 ‘바람이 전하는 말’도 노래방 단골 애창곡 중 하나란다.
젊은 시절 가을이면 호젓한 시골길을 무작정 걷기 좋아했다는 홍관장은 가을은 왠지 스산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해 구슬픈 노래를 떠올린다.
풍요 뒤에 오는 상실의 의미를 가진 가을이라 그럴까?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처럼 정처 없는 방랑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영락없는 가을 남자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낭만적 정서들이 조금씩 사라져 안타깝다는 홍관장은 벌써부터 우수 짙은 가을의 쓸쓸함을 기다리는 듯 했다.


▶장인환씨(37·MC 노래강사)
“자신이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좋은 노래 한 곡 가지고 있는 것도 인생의 큰 행복이라 봅니다”
21일 월배새마을금고회관 ‘주부노래교실’에서 만난 장인환씨는 마른 체격이지만 항상 미소가 배어나왔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게다가 계절성까지 가미한 노래라면 심금을 울리죠. 그러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아름답겠죠”라는 장씨는 어디든지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 1∼2곡은 반드시 갖길 권했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가을노래를 만나고 떠나 보낸다는 장씨는 김민기의 ‘가을편지’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동요 ‘가을까지’ 등이 생각난다고.
‘가을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특히 가을향취를 길게 전하는 노래로 인상이 깊다고. 이날 월배지역 주부들에게 강민주 노래의 ‘톡톡쏘는 남자’ 등 노래강연을 하는 장씨는 노래로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로 보였다.


▶최양숙씨(36·주부·본동)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갔나, 그리운 친구여”
최양숙씨는 가을이 되면 조용필의 ‘친구여’가 떠오른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양숙씨는 시험이 끝나면 짓눌렸던 무거운 마음을 털어 버리기 위해 약속이나 한 듯 친구들과 과자 몇 봉지 사서 시외로 달려가는 버스에 몸을 맡기곤 했다.
새장에서 나와 자유를 찾은 새처럼 일상을 뒤로 하고 달리다 버스가 멈춰서는 곳이 목적지가 됐다. 어느 가을 우연히 내린 시골마을에서 신발 벗고 냇가에 발 담가 걷기도 하고, 대추 따먹다 주인에게 들켜 줄행랑 치기도 했다.
그때의 빛 바랜 추억이 ‘친구여’란 노래 속에도 담겨져 있어 양숙씨는 이 노래가 가을에 떠오른다고. 함께 있을 땐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친구 혜진과 양자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양숙씨는 그립기만 하다.


▶강상국과장(47·달서구청 현장민원해결과)
“가을노래하니 ‘백마야 우지마라’가 생각나는군요. ‘백마는 가자울고 날은 저문데…,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벌판에 또다시 고향생각…, 가을냄새도 물씬나고 가사도 좋지 않습니까”
강과장은 노래보다 가을이면 85년부터 88년까지 서울 올림픽 파견근무때의 생각이 절절하다고. 서울이라는 객지에서 4년동안 보내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올림픽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도록 자신이 일조했다니 지금도 어깨가 으쓱하다고.
올 가을에 특별한 건 없나요라는 질문에 강과장은 “현장의 불편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발족한 현장민원해결과가 이달 28일자로 2주년을 맞는다. 올 가을엔 구민들에게 더 충실할 수 밖에요”로 대신했다.


▶이현주씨(29·대구달서여성인력개발센터 팀장·송현동)
대학시절부터 가수 김광석의 공연은 무작정 찾아다녔다는 이팀장.
김광석의 열렬한 팬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다 좋아하지만 낙엽 떨어지는 가을쯤이면 ‘사랑했지만’이 특히 생각난다고.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붉게 물들어 내일을 기약하는 가을 노을 아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 애절하다고. 이팀장은 70년대 모던 포크를 계승한 90년대의 마지막 싱어라며 김광석을 찬사했다.


▶안선희씨(18·계명대 사회과학부)
안선희씨는 중학 시절 낙엽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꿈이 이뤄진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무작정 낙엽 떨어지는 나무 아래로 친구랑 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낙엽은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선희씨는 친구에게 나무를 흔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선희씨의 머리 위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고의였지만 어쨌든 꿈은 이루어졌다. 당시 그녀가 꿈에 그리던 강타 닮은 남학생이랑 사귀게 됐고, 그 만남은 고3 때까지 이어졌다.
이 일 때문에 가을과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의 기억 때문에, 그리고 강타를 닮았던 남자친구 때문에 HOT의 ‘행복’이 떠오른다고 한다.
계명대 방송국 아나운서이기도 한 선희씨는 대학생이 돼 처음 맞는 이번 가을에도 최고의 아나운서의 꿈을 담아 낙엽 떨어지는 캠퍼스의 나무 아래를 찾을 계획이라고 한다.


최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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