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아!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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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지없는 사랑을 베푸시다 2005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어릴적 살았던 집에는 아버지께서 심은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아버지는 가을이면 항상 홍시를 따서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주시곤 하였다.
2011년 10월 어느날 택배가 왔다고 하여 받아보니 큰 형님이 보내주신 아이스 박스였다. 무심코 아이스 박스를 열어 보니 홍시였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하여 큰 형님이 홍시를 따서 보내 주신 것이다. 나는 홍시를 본 순간 아버지 생각에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라 아내가 보고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처럼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때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적도 없었다. 또한 그때처럼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큰형님과 형수님이 고맙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나는 어머님께 더욱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자주 찾아뵈려고 나름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큰형님과 형수님께도 잘 해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머님께나 큰형님 내외분께도 마음만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함은 내 부덕의 소치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이후 장인·장모님은 아내 생일엔 오시지 않더라도 내 생일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직접 찾아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거꾸로 나는 직장 관계로 지방에서 근무한다는 핑계로 당신들 생신때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잘 모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013년 장모님 생신에 호텔을 예약하여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라는 플래카드를 호텔방에 걸어놓고 내외분을 오시도록 했다. 어른들께서 좋아하시는 메뉴를 고르고 술도 준비하여 대작해 드렸다. 식사 후에는 노래방에 모시고 가서 재롱잔치도 해드리는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두 분께서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보고 생신때 마다 꼭 이벤트를 마련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휴가때 아내와 함께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정동진의 해돋이도 보고, 지역의 축제에도 모시고 다니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두 분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 이런게 효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편으로 돌아가신 아버님과 연로하신 어머니가 생각나 남몰래 눈물이 나곤 한다. 장인, 장모님은 도시풍의 멋쟁이시고 여행을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건강하시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모시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님과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님은 모시고 다니고 싶어도 모실 수가 없다. 그래서 효도도 다 때가 있다는 옛말이 꼭 맞다는 것을 느낀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할 때 즐거우면서도 언제나 가슴 한켠엔 멍울이 남는다.
부모는 생명의 근원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언제나 나의 편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바쁜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부모님 뵙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 돌이켜 보니 부모님께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더구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불효자식이 목 놓아 불러봅니다. 아! 어머니, 아버지.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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