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효도도 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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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새해 아침이다. 해가 변해도 변함없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님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해서 오늘은 효도에 관하여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옛날에 칠순이 다 된 홀어머니와 효자로 소문난 아들이 있었다. 그 홀어머니는 언제나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화색이 만연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다 효자 아들 덕이라고 자랑했다. 하루는 한 사람이 도대체 그 아들이 홀어머니께 얼마나 잘하기에 그러나 싶어 몰래 염탐하려고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아들의 뒤를 밟았다. 아들이 사립문을 열며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들어서자 그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들고 오시더니 아들의 신을 벗겨 발을 씻겨주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염탐하던 동네 사람이 “저런 못된 놈이 있나, 늙은 어머니한테 발을 씻겨 달라니, 어떻게 저런 놈을 효자라고 한단 말인가”하고 돌아간 다음날 그 아들에게 따져 물었다. “네 이놈, 늙은 어머니께 발을 씻겨 달라는 놈이 어떻게 효자란 말이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네, 저는 분명 효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니까요”라고 했다.
그렇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 부모님이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짓궂은 질문 하나 하고 넘어가자. 어느 가정에서나 있음직한 얘기 한가지. 노모께서는 전기세가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하여 당신 방의 불(전구)을 끄라고 하신다. 이 경우, 아들이 자기가 쓰는 방엔 환하게 불을 켜놓고 늙으신 어머님 방을 어둡게 할 수 없어 어머님 방의 불을 켜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어머님이 원하시는대로 불을 끄는게 옳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일까? 힌트는 위의 사례에 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던 한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두눈을 잃게 되었는데 청년은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위로와 간호에도 불구하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쪽 눈을 기증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년은 양쪽 눈이 아닌 한쪽만 기증받은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지 않고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붕대를 풀던 날, 어머니를 본 순간 통곡을 하였다. 어머니의 한 쪽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얘야 두쪽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이 다음에 앞 못 보는 어미를 네가 돌보아야 할 걸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며 울고 계셨던 것이다. 모성이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부모의 존재는 생명의 근원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언제나 나의 편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親不待”라는 말이 있듯이 자식들이 효도 한번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부모님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안계신다.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효자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찾아 뵙고 전화 한통 더 드리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즉 마음먹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먼 여행이 있다고 한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이는 실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바쁘다는 오늘의 핑계가 훗날 후회로 남지 않도록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어머님께 전화드려야 하겠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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