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37. 낙동제일강산정, 영벽정(映碧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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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8]

1) 프롤로그

이번 이야기는 우리 고장 낙동강가에 있는 영벽정이라는 한 유서 깊은 정자에 대한 이야기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낙동강변에 자리한 이 정자는 우리나라 최대 벌족 중의 하나인 파평 윤씨 대구 문산 입향조 아암 윤인협 선생이 지은 것이다. ‘낙동제일강산(洛東第一江山)’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편액을 내걸고 있는 아름다운 정자. 낙동 풍류의 상징 영벽정에 대해 한 번 알아보기로 하자.   


2) 파평 윤씨 유래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이에 버금갈 정도로 요즘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족보이야기’다. 재미는 고사하고 실생활과도 상관이 없으며, ‘누구의 몇 대손, 몇 대조, 사돈의 8촌’ 하면서 더하기 빼기에다 곱하기까지 나온다. 게다가 온통 한자투성이다. 하지만 필자는 ‘족보이야기’만큼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문중 소유의 문화유산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관련 문중의 족보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있겠는가. 반려견 한 마리를 분양받을 때도 우리는 그 어미의 혈통에 대해 꼭 물어본다. 개 족보도 이 정도인데 사람 족보야 더 말해서 뭣 하겠는가. 
파평 윤씨 시조는 고려 벽상삼한익찬공신 삼중대광 태사공 윤신달(尹莘達)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기이한 탄생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라 진성왕 7년(893)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 날 연못에 구름이 자욱하더니 천둥·번개와 함께 연못 위로 옥으로 만든 상자 하나가 떠올랐다. 고을 태수가 제단을 마련해 기도하기를 여러 날, 여전히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어느 날 동네에 사는 윤온(尹?)이라는 이름의 한 노파가 이 옥함을 건져보니 그 안에 옥동자가 있었다. 얼굴은 용의 상이오, 양쪽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日月을 상징), 좌우 겨드랑이에는 여든 한 개의 비늘이오, 발에는 일곱 개의 검은 점(북두칠성)이 있었다. 노파가 거두어 기르며 자신의 성을 붙였으니 그가 바로 윤신달이다.


파평 윤씨 문중에는 가전되어 오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윤신달의 5세손인 고려 대원수 윤관에 관한 이야기다. 전장에서 잉어 떼가 다리를 놓아주어 윤관 장군이 죽음을 면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파평 윤씨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3) 파평 윤씨 대구 문산리 입향조


파평 윤씨 대구 문산리 입향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의 일로 시조 윤신달의 21세손인 아암 윤인협(尹仁浹)에 의해서다. 선생은 벼슬을 탐탁찮게 여겨 진사까지만 했다. 그리고 중년 이후의 삶은 이곳 문산의 낙동강가로 내려와 아금암 행탄 위에 영벽정을 짓고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4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이곳 문산리는 파평 윤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4) 낙동제일강산정, 영벽정


영벽정은 아금암이라 불리는 제법 높은 벼랑위에 있다. 그래서 강변길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십여 개 올라야 영벽정을 만날 수 있다. 영벽정은 정면 4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 각 1칸은 방이다. 한낮에도 정자 뜰에 서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는 수령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 4그루와 향나무가 만들어 내는 나무그늘 때문이다.
정자는 그 성격에 따라 크게 2가지 유형이 있다. ‘학문형’ 정자와 ‘풍류형’ 정자가 그것이다. 이중 풍류형 정자는 대체

로 정자 내부에 많은 시판들이 걸려 있다. ‘낙동제일강산’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곳 영벽정에는 정말 많은 시판들이 걸려 있다. 정사철·우성규·송근수·서찬규·송병선·송병순·최익현·이억상·윤종대·채헌식·이병운·서필도·박승동·윤봉오 등의 시판이 그것이다. 이중에는 영벽정 창건자인 윤인협 선생의 시도 있다.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영벽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남으로 내려와 경치 좋은 곳이 이 강가이니, 늙어감에 놀고 쉬게 작은 정자를 지었네. 홀로 시서를 안고 한가히 쉰지 오래이니, 세상사 많은 뜻이 이 가운데 멈추네.’
영벽정 관련 시 중에는 영벽정의 8경을 노래한 ?영벽정팔경(暎碧亭八景)?이라는 시도 있다. 이 시는 성주의 생원인 문잠 윤종대가 지은 것이다. 참고로 그 제목만 살펴보면 제1경 행탄풍범(杏灘風帆), 제2경 다림연류(茶林烟柳), 제3경 연포호월(蓮浦皓月), 제4경 운정취벽(雲亭翠壁), 제5경 비슬선하(琵瑟仙霞), 제6경 아금어화(牙琴漁花), 제7경 마천조람(馬川朝嵐), 제8경 봉산석조(鳳山夕照)이다.

 

5) 에필로그


영벽정은 ‘문산월주(汶山月柱)’로도 유명하다. 음력 7월 17일 밤이 되면 보름달이 동쪽 강물 위로 휘영청 밝게 떠오른다. 문산월주는 이때 영벽정에서 달을 바라본 풍광이다. 하늘의 달과 강물위에 비친 달그림자 사이에 마치 기둥이라도 하나 세워 놓은 듯 은은한 달빛이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풍광이 문산월주다. 일 년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예전에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영벽정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에 관찰되는 문산월주가 예전보다 더 볼만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산월주가 이루어지는 지점에 강정보가 들어서면서 강물의 면적이 더 넓어졌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영벽정 주변에는 많은 식당들이 있는데 거의가 다 잉어찜 전문점이다. 파평 윤씨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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