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31. 칠성바위, 연화장세계 그리고 화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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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1) 프롤로그


필자는 1970년 7월 7일 대구 북구 칠성동(七星洞)에서 태어났다. 그날이 경부고속도로 개통일이어서 필자의 어릴 적 별명은 ‘고속이’였다. 행운의 숫자인 ‘7’과 인연이 있고 동시에 고속도로 개통일에 태어났으니, 인생도 고속도로처럼 시원스럽게 뻥 뚫릴 것이라는 바람에서 ‘고속이’라고 했던 것 같다. 칠성동은 실제로 칠성바위라 불리는 일곱 개의 큰 바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현재 칠성바위는 지하철 대구역 광장 동편에 있다. 본래는 길 건너 옛 시민회관 앞마당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 대구에는 칠성동 칠성바위 만큼이나 유명한 칠성바위가 또 있다. 우리 고장인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의 화장사라는 사찰에 있는 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2)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주관, 칠성바위


칠성바위는 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우리나라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수십 아니 수백 개가 넘는 칠성바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칠성바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칠성바위가 민속신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칠성바위가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는 칠성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대부분의 칠성바위가 선사시대 지석묘 즉 고인돌이라는 점이다.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사람의 무덤이다.[물론 이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마지막으로 칠성바위라고 해서 바위의 수가 반드시 일곱 개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위의 수가 8개, 9개라도 이름은 하나 같이 칠성바위로 불린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칠성바위는 우리네 할머니·어머니들이 치성을 드리는 신성한 기도공간이었다. 왜냐하면 옛 사람들은 칠성바위를 하늘의 북두칠성이 땅 위에 그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칠성바위 제사의 역사는 모르긴 해도 아마 수천 년은 넘었을 것이다.


3) 이상적인 불법의 세계, 연화장세계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불법세계 중에 ‘연화장(蓮華藏)세계’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불교경전 중 『화엄경』과 『범망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불국토사상이다. 복잡한 내용이지만 최대한 요약해보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연화장세계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다. 󰡔화엄경󰡕에서는 세상의 맨 아래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며, 향수해 가운데 거대한 한 송이 연꽃이 있는데, 그 연꽃 속에 있는 세계가 곧 연화장세계라는 것이다. 한편 󰡔범망경󰡕에서는 1,000개의 꽃잎을 지닌 거대한 연꽃 한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으며, 1,000개의 연꽃잎은 그 각각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그 세계에는 비로자나불이 변신하여 나타난 1,000의 석가모니불이 주재한다.


솔직히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연화장세계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연꽃[연화] 속에 있는[장] 불국토[세계]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4) 민속신앙과 불법의 만남 화장사


수천 년 전 청동기인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인돌. 그중에서도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일부 고인돌군을 우리는 칠성바위라 칭한다. 하늘에 북두칠성이 있다면 땅에는 칠성바위가 있는 셈이다. 여하튼 옛 사람들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온 칠성신앙에 근거해 칠성바위에 치성을 드렸다. 그런데 이러한 민속신앙의 공간이었던 칠성바위가 불교신앙의 공간으로 변신한 곳이 있다. 바로 대구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에 있는 화장사(華藏寺)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찰들은 사찰명 앞에 으레 ‘천년고찰’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화장사는 아니다. 이름값에 비해 그 역사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화장사의 창건내력은 대략 이러하다.


화장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에 보원 김영옥이라는 인물에 의해 창건되었다. 김영옥은 독실한 불자인데 한학과 풍수지리 등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는 마을에 절을 하나 짓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3년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신령이 나타났다. 신령은 7개의 바위가 있는 곳에다 절을 지으라고 했다. 이 계시에 따라 김영옥이 칠성바위 곁에다 절을 세워졌으니 지금의 화장사이다. 이후 사람들로부터 보원거사로 불렸던 김영옥은 사후 그의 몸에서 일곱 개의 사리가 나왔다. 신기하게도 칠성바위 곁에 절을 세운 창건주의 몸에서 일곱 개의 사리가 나온 것이었다. 이 일곱 개의 사리를 봉안한 보원거사 사리탑은 현재 화장사와 대구교도소 담장 사이 빈 터에 네 개의 칠성바위와 함께 서 있다.


현재 이곳의 칠성바위는 화장사 경내에 세 개, 화장사와 대구교도소 담장 사이 빈 공간에 네 개, 화장사 흙돌담 사이에 한 개 모두 8개이다. 일부 바위에는 성혈과 동심원 등 고대인들이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남아 있다.


5) 에필로그


지금까지 수천 년 전 청동기인들의 무덤이 칠성신앙에 힘입어 칠성바위가 되었다가, 다시 화장사라는 불교 사찰로 변해온 내력을 살펴보았다. 2,000년대 초 한때 화장사가 헐리고 칠성바위가 치워질 뻔한 위기가 있었다. 도로계획 때문이었다. 하지만 칠성바위가 선사시대의 지석묘[대구시 기념물 제13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도로계획은 취소되었고 화장사와 칠성바위는 살아남았다. 수천 년 내력의 기도처가 이처럼 도로계획을 이겨내는 것을 보니 정말 ‘신 없다’ 소리 못하겠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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