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22. 국내 유일의 12칸 정려각, 현풍곽씨 12정려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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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7]

1) 프롤로그


한적한 시골 국도변을 지나다 보면 가끔 생뚱맞은 모습의 전통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흙돌담이 나지막하게 둘러져 있고, 그 안쪽에 가분수마냥 커다란 기와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작은 건물이 그것이다. 담장 높이가 어른의 가슴 정도, 지붕 높이도 어른 키 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이다. 그런데도 이 작은 전통 건축물은 매우 특별해 보인다. 왜냐하면 ‘담장·홍살·단청·공포·기와’와 같은 고급 건축기법이 곳곳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건축물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 정려각이다.
참고로 정려와 정려각은 다르다. 정려는 가운데가 텅 빈 문 형태의 구조물을 말하며, 정려각은 이 정려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을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려각 내부에는 정려·정려편액·정려비·정려기문 등 정려 사실과 관련된 물건들이 봉안되어 있다. 이번에는 2회에 걸쳐 우리나라 최다 칸 정려각인 ‘현풍곽씨 12 정려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효자·충신·열녀에게 내린 임금님의 표창


일반인들은 정려각을 귀신·무속 등과 관련짓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려각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또 그 위치가 당산나무·선영·누정 옆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붉은 홍살 안쪽에는 비석·현판 같은 것들이 있기도 하고, 건물 안팎의 벽면에는 무당집마냥 울긋불긋 단청이 칠해져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려각은 그 위치가 특별하다. 도로변·마을 입구·마을 중심·재실·서원처럼 유동인구가 많거나, 혹은 마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장소에 정려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 이 두 가지 특징만으로도 이 건축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지기 위한 목적에서 건립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려(旌閭)는 충신·효자·열녀에 대한 표창의 정표로 그들의 집 대문 앞(정문), 또는 마을 앞에 세운 문(정려)을 말한다. 정문과 정려, 이 둘을 합쳐 보통 정려라고 하며 다른 말로는 ‘도설·작설·오두적각·홍문·홍살문’이라고도 한다.
정려는 한·중·일 3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는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충·효·열 삼강을 숭상한 유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삼국·신라·고려·조선·대한제국·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정표 정책’이 이어져왔으며, 정표 정책에 있어 최고등급의 표창이 바로 정려였다. 정려가 결정되면 정려·정문이 내려지는 것 외에 세금과 부역이 면제되거나, 면천(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남)·사면·벼슬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처럼 정려 제도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충·효·열을 권장함과 동시에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예치와 교화의 한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조선시대 정려의 청원과 결정 과정


조선시대 정려의 청원과 결정은 서원의 ‘사액’ 결정과 유사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백성·유림·향교→(수령)→감사→예조→임금→예조→감사→(수령)→백성·유림·향교
·어사→임금→어사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지역의 백성·유림·향교가 나서 고을 수령 또는 감사에게 정려를 청원한다. 감사는 이 청원을 예조에 보고하고, 예조는 임금에게 보고한다. 임금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려 결정이 내려지면 이번에는 청원이 올라갈 때의 역순으로 정려의 명이 하달된다. 이에 반해 어사에 의한 청원은 어사 스스로가 인물을 발굴하고 그 행적을 확인하여 임금에게 직접 청원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일제강점기 때는 ‘유림 향약 본소’라는 조직 명의의 ‘포창완의문(일종의 증명서)’이 정려를 대신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지방의 향교와 서울의 성균관이 중심이 되어 정표 제도의 맥을 이어갔다. 


4) 정려각의 유형


정려각은 크게 ‘목조형 정려각·대문형 정려각·석조형 정려각’ 3가지 유형으로 구분을 한다. 이중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 목조형 정려각인데, ‘기본형’은 정면 1칸·측면 1칸의 규모로 정표자 1인을 대상으로 한다. ‘병렬형’은 두 개 이상의 기본형이 일렬로 배치된 형식이며, ‘다칸형’은 정려각의 내부가 여러 칸으로 나눠져 있는 형식이다.
대문형 정려각은 대문의 상부에 홍살과 함께 정려 혹은 정려편액 등이 설치된 유형이다. 본래는 대문 앞에 세웠던 정문이 세월이 흐르면서 유지 관리 등의 이유로 대문과 결합하여 대문 안으로 옮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구지역에서는 북구 도남동의 ‘유화당 정효각’이 대구 유일의 대문형 정려각이다.
석조형 정려각은 돌로 만든 정려각이다. 두 개의 돌기둥 위에 돌지붕을 얹고 그 사이에 돌로 만든 석판 형태의 정려편액을 끼우거나, 아니면 비석을 세웠다. 이는 조선 후기 고종 이후 유행한 정려각 유형으로 목조 정려각에 비해 설치 및 유지관리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가창면 행정리 ‘송병규 효자비각’과 논공읍 금포리 ‘충주 석씨 효부 비각’을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현재 대구광역시에는 모두 35개의 정려각이 있는데 목조형 정려각이 31개, 대문형 정려각이 1개, 석조형 정려각이 3개이다.


5) 우리 고장에 국내 최다 칸 정려각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 건물 안에 여러 칸의 정려각을 둔 유형을 다칸형 정려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한 지붕 안에 정려각이 1개일 수도 있고 2, 3개 또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고장에 무려 12칸 규모의 국내 최다 칸 정려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1~2칸이 아닌 무려 12칸으로 이루어진 정려각으로 이름하여 ‘현풍 곽씨 12 정려각’이다.
<다음에 계속>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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