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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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불가에서는 인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보물처럼 값비싸 그런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좋거나 싫거나 모든 사물은 인연에 의해 생멸한다는 다시 말하면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 원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 힘이 되는 연줄이 인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우리들이 사용하기 쉬운 ‘인연을 끊는다’는 말은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인연은 그만큼 우리끼리 서로서로 맺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인연은 매우 질김을 실감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잊은듯하다 가도 그 실낱같은 인연 때문에 다시 관계가 정상화되고 나아가 더욱 돈독해 지는 경우에는 사는 맛 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다 인연의 질긴 실이 어느 틈에 닳아빠져 툭 끊기면 순간 잘됐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휑한 느낌이다. 그래서 다시 인연이 이어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때도 많다.
길가다 차이는 돌부리에도 인연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 사는 세상에 인연이 적기나 하랴. 그 인연을 지나치게 끌어당기려 하면 늘 인연은 자신도 모르게 멀리 달아난다. 그러다 어느새 다가오지만 태반은 오는지도 모른 채 살아 사는 이들도 엄청 많지 않을까. ‘날랜 장수 목 베는 칼은 있어도 윤기(倫紀)베는 칼은 없다’고 그만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우리사회에서 인연을 중시하는 분야는 혈연과 지연과 학연이 아닐까 싶다. 누구 자식이고 어느 집안이며 고향은 또 어디고 학교는 어디를 몇 년도에 나왔는지 묻는 일은 우리끼리 관계를 지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그런 질문을 하다보면 어느 구석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서로 딱 맞는 조건들이 발견되면 그 때부터는 선후가 형성되고 말을 놓네 높이네 형님 아우하며 죽이 맞는다.
그 때는 죽이 맞는다고 그 인연이 반드시 영원하라는 법은 당연히 없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고부간에도 그렇고 심지어 남녀관계에서도 그렇다. ‘칠자불화(漆者不畵)’라고 칠장이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게 되면 문제는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들이 쌓이는 셈이다. 금이 간다는 말이다. 금간 그릇에 물을 담으면 물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정치하는 사람들도 인연을 매우 중요시 한다. 유별나게 중시하는 정치인들도 많다. 그래서 정치하려면 그런 인연들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 그 인연을 빌미로 들이미는 일들이 잦다. 조금유리하다 싶으면 이 사람에게 붙었다 인연이 끊어졌다면 또 다른 이익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은 다반사다. 이 정당에서 저 정당으로 옮기는 게 무슨 대수냐며 낯 뜨거운 일도 예사다. 오죽하면 철새정치인이라는 별명들이 나붙는가.
불가에서는 길거리에 오고가는 사람끼리 잠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하물며 지난 2012년 2월부터 써온 칼럼 ‘사통팔달(達)’도 160여회에서 인연이 다한듯하다. 시작할 때는 제목처럼 사통팔달 막힌데 없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속절없이 써 가려했으나 그러질 못한 게 아쉬움이다. 특히 ‘달’자에 한문 ‘達’을 쓴 것은 달서구와 달성군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달’자를 따와 ‘사통팔達’로 했음을 밝힌다. 그동안 졸고를 읽어주신 푸른신문 독자들에게, 연재해준 푸른신문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늘 그 인연을 소중히 간직할 것임을 말하고 싶다.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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