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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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유입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이는 음악문헌학자 손태룡교수의 고증에 의해 이미 발표가 됐다.
미국 선교사 사이드보텀 부부가 대구에 파견되면서 일본을 거쳐 부산항에 잠시 화물로 머물다 곧장 낙동강 소금배에 실려 사문진나루로 운반된 것이다.
사문진 나루에서 종로 까지 3일을 걸려 들것에 의해 운반됐다. 그날은 비가 와 매우 힘들었으며 30여명의 인부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몇 년 전 선교사의 부인이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편지는 지금 부산의 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편지에는 사문진에서 인부들 구하는 일이나 운반과정이 매우 생생하게, 또한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특히 종로 집 까지 운반해서 방안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까지를 그림으로 그려 편지에 동봉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돼 있어 매우 중요하고 희귀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피아노는 그 당시 서양문물의 척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도 당연히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로서는 굉장한 문화충격이랄까.
그래서 피아노의 울림을 듣고는 다들 피아노 통 속에 귀신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때는 피아노를 ‘귀신통’이라 불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러나 문화충격은 이렇게 언어에서도 엿 볼 수 있듯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후 대구의 음악은 급속도로 발전을 이룬다. 대구가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음악도시로서 명성이 자자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여왔다는 것이 그 원인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피아노로 인해 음악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때의 그 피아노는 이듬해 선교사가 다른 곳으로 부임해가는 바람에 피아노도 함께 대구를 떠나 그 뒤의 피아노 행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매우 아쉽기만 하다.
달성군과 달성문화재단은 지난 2012년부터 이를 스토리텔링화 하고 또한 우리나라 피아노의 첫 유입지라는 사문진나루터에서 매년 100대(첫해는 99대)의 피아노콘서트를 열고 있다. 100대라는 숫자는 마침 달성군이 개청 100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콘서트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100대의 피아노가 어떻게 화음을 이루며 함께 협연이 가능할까 당시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궁금해 하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 2일과 3일 이틀간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렸다. 첫날은 조금 클래식한 분위기에서 주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이튿날은 대중화된 분위기로 열리는 게 통상적인 예다. 올해 첫날에는 달성군 옥포면에서 어린 시절 자주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게스트로 참여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정경화는 야외에서 이런 공연은 처음이라며 매우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30여분을 연주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튿날에는 장사익이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로 열연해 청중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한 것은 거의 20여년 만이다.
이 날 많은 청중들은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 때문에 ‘행복’하다는 표현들을 많이 썼다. 낙동강 강바람과 함께 가을의 향기가 물씬대는 사문지나루터 공연장이 너무 좋다며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최근 피아노가 우리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세태에 모두들 피아노가 주는 선율에 흠뻑 빠져 들었다.
어저께 바르샤바에서도 우리나라의 조성진이 제 17회국제쇼팽피아노콩쿨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어 올 가을은 피아노가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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