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태풍은 늘 지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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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7]

최근 우리들에게는 몇 개의 태풍이 지나갔다. 그 여파로 왈가왈부하거나 망연자실하거나 텅 비어버린 주머니를 바라보며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태풍이 지나 갈 때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큰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태풍은 지나갔다. 하늘은 가을을 향해 점점 높아지고, 저 멀리 흰 구름은 뭉실뭉실 아직은 따가운 햇살과 여유 있게 다툰다. 언제 태풍이 불었냐는 듯.
흔히 태풍은 폭풍과 폭우를 동반한다. 그러다 지나간 후 다가오는 그 고요. 한나라 때 유향이 숱한 사람들의 일화와 고사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언행들을 기술하고 편집, 저술한 역사 고사집 ‘신서’에 ‘충풍지쇠야불능기모우(衝風之衰也不能起毛羽)’라는 구절이 있다. 폭풍 같은 바람이 일어났을 때 그 힘이 대단하지만 힘이 약해지면 털끝 하나 못 움직인다는 뜻이다. 모든 태풍도 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지만 그러나 그 후유증은 늘 엄청나다. 대상이 서민일 때는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다.
남북한 고위급 접촉이 열매를 맺었다. 무박 4일의 마라톤협상 결과다. 동냥자루도 마주 벌려야 들어가듯,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무슨 일이든 서로 협조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보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준전시 상태를 해제하는 것에 목함지뢰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고 당국자 회담이나 민간교류 활성화에 응했다니 같은 민족끼리의 일촉즉발 위기는 넘겼다. 태풍이 지나갔다.
그 태풍이 지나면서 서울이나 평양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이 평온했다는 보도는 자연에서 느끼는 태풍의 고요함과 흡사하다. 다만 고요에서 안도하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는 정도다. 그렇다고 고요가 안일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사정을 더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넣기 십상이어서 늘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배를 만든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여름을 지나 추석 즈음해서 늘 우리는 태풍과 씨름해 왔다. 최근의 고니도 일기예보의 방정보다는 세력이 약했다. 그렇지만 고니가 지나가 버릴 때 까지는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바람이란 항시 그 세기가 일정치 않으니 마음을 놓을 수 있으랴. 동반하는 비도 언제 폭우로 바뀔지 알 수 없으니. 장자의 말대로 “바람이란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세상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느닷없이 들이 닥친 중국증시의 폭락도 우리들에게는 태풍 못지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떵떵거리던 중국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세계경제의 문제아로 등장하다니. 중국경제에 의존하는 많은 국가들에게도 그들의 글로벌 리더십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우리증시도 폭락 장세를 보이며 개미들의 탄성이 태풍 못지않다. 불황의 유일한 원인은 호황이라더니 잘 나갈 때 주머니를 여미는 것도 경제태풍을 막아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최근 영국의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해 이목을 끌고 있다. 종전에는 블랙홀로 들어간 입자는 방출하지 않고 결국 증발해 버린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런 그가 어저께 블랙홀은 생각만큼 검지고 않고, 영원한 감옥도 아니다 라며 “블랙홀에 빠졌다고 생각해도 포기하지 말라.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고 새 이론을 제시했다. 블랙홀도 빠져 나갈 방법이 있다니 태풍쯤이야. 블랙홀은 모르겠지만 태풍은 그래도 늘 지나갈 뿐이 아닌가.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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