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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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형제를 두고 우리는 전통적으로 늘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부각되는 편이었다. ‘형제는 용감했다’ 또는 ‘의좋은 형제’등이 그럴 때 자주 쓰이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형제이야기들도 수월찮게 많다. 흥부와 놀부가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그럴 때는 대개 배다른 형제이거나 의붓형제일 경우가 많다. 요즘은 그런 차별성이 없지만 서얼차대가 심했던 조선시대에는 그런 잣대로 인해 같은 사회적인 통념상 형제라도 엄청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혈연관계로 얽혀진 형제라도 머리가 굵어지면 이해득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해득실은 대개 돈으로 인해 평가되고 판단되기에 현대사회에서는 돈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형제간의 싸움들이 벌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서로 다독이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형제들도 많지만 이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대신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전투는 그것이 재벌일 경우 세인들의 주목을 끌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아닌가.
형제간의 싸움은 늘 있어왔다. 그러기에 옛 선인들은 이를 좋은 말과 온갖 비유로 숱한 덕담들을 남겼다. 장자는 “형제는 수족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의복은 다른 옷으로 바꿔 입을 수 있지만 수족은 한 번 없어지면 다시 붙일 수도 없다”고 했다. 성서에서도 형제간의 알력에 대해 좋은 비유를 군데군데 남기고 있다. 구약성서 잠언에는 “의좋은 형제는 요새와 같으나 다투게 되면 그 앙심이 성문 빗장 같아 꺾이지 않는다 ”고 했다.
고려 공민황 때의 이야기다. 한 형제가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웠다. 형과 한 덩이씩 나눠 가졌다. 강가에 이르러 배를 함께 탔다. 배가 강 중간쯤에 이르자 아우는 갑자기 손에 쥔 황금덩이를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이를 본 형이 의아해하며 까닭을 물었다. 아우는 “금을 줍기 전까지는 형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나 금을 나누어 갖고 부터는 형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형이 그 말을 듣고는 너의 말이 옳다며 그 역시 금을 강에다 던져버렸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지난달 말부터 갑자기 언론에 큼직하게 오르내리며 세인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들의 분쟁은 아직도 뚜렷한 귀결점 없이 그룹의 운명까지 들먹일 지경이다. ‘왕자의 난’이니 하며 모든 매체들은 매일 비중 있게 다루며 독자 혹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롯데재벌이 국내 5위안에 속하기에 관심이 더욱 쏠리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개운하지 못한 맛은 왜일까.
하기야 국내의 손꼽히는 재벌들의 경영권 분쟁은 늘 상 있어온 일이다. 이런 분쟁 없는 재벌 있으랴. 물론 그들로서는 사활이 걸린 일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들이다. 오죽하면 일부 단체에서는 롯데불매운동까지 선언하면서 관심을 표명했을까.
용맹을 일세에 떨친 위나라 조조의 두 형제 조비와 조식. 사이는 나빴다. 훗날 형이 왕위에 오르자 동생 식에게 늘 심하게 굴었다. 아우에게 일곱 걸음을 옮길 때 까지 시를 지어야 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게 유명한 ‘칠보시’다. 원래 6구이나 4구로 줄어 인구에 회자했다. “콩을 삶은데 콩 깎지로 불을 때니/ 콩이 솥 가운데 있으면서 웁니다/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는데/ 들볶기는 어째서 이렇게 급하게 하십니까?”. 재벌 후손 형제들이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시다.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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