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201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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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여름은 여름이어서 덥다. 여름이어서 시원하기도 하다. 덥지 않으면 시원할 리 없다. 여름의 상반된 논리에 겨우 버티는 서민들이야 한 줄 시원한 소낙비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소낙비는 예전과는 달리 국지성에다 폭우로 변하기 십상이어서 그도 막무가내 하늘 올려다보며 검은 구름 몰려오길 기다린다는 게 만만치는 않다. 길 건넌 저 쪽은 여전히 불볕인데 이 쪽은 물 난리치니 이 모양 또한 좋을 리 없다.
어저께 초복이었으니 더위도 막 오름세를 탔다. 소설가 유주현은 지금 이맘때쯤을 “삼복 허리의 햇발은 불길을 머리에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웠다”고 표현했다. 태풍도 간간히 섞여 아직은 ‘불길’ 같지는 않지만 온난화 여파로 언제 그런 ‘불길’이 불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상예보는 과학이 엄청 발달했다지만 태풍의 진로조차 맞추기 어려울 만큼 아직은 멀었다. 그야말로 하늘만이 아는 일 아닌가.
요즘 하늘만 아는 일들이 날씨나 기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꽤나 벌어지고 있다. 간담을 조마도마하게도 하고, 때로는 서늘하게 하기도 하는 뉴스들이다. 메르스로 곤욕을 치르고 아직도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은 상태다. 나라 경제가 휘청댈 지경이었다. 추경이 국회에서 어떻게 결말이 날지 오리무중이지만 그 결과에 따라 장삼이사들의 여름살이가 은근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사태 까지 한 켠에서 우리를 으르고 있으니 말이다.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수원 20대 여성은 끝내 숨진 채 발견됐고, 그에 앞서 용의자도 자살했다니 참 어수선한 여름이다. 왜 그랬을까? 살충제가 든 사이다를 마셨던 상주 할머니들. 왜 할머니들을 겨냥했는지도 참 의아스럽다. 더 끔직하고 으스스한 것은 교수가 제자를 감금하고 폭행하며 인분까지 억지로 먹였다니 될성부른 일인가. 왜 그랬을까? 정부기관이 해커업체와 접촉했다는 정황들이 포착됐다면서 특위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높다. 왜 그랬을까? 이럴 때 이란 핵협상이 십 수 년 만에 타결돼 다은은 북한이라는 분석이 성급히 나오는 마당이다. 왜 그럴까? 참 하늘은 아는 것도 많다고 외치고 싶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은 열로서 다스린다고 했다. 힘은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요즘 여름 더위에도 이게 통할까. “보리누름에 선 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더워야 할 시절에 도리어 춥게 느껴야 할 때가 있음을 이른 말이다. 근래의 이런 뉴스를 접하고도 덥다덥다 한다면 어딘가 온전치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춥다춥다 하기는 그렇지 않는가. 열을 열로서 다스리고, 힘을 힘으로 물리친다지만 이 뉴스를 저 뉴스로 다스리고 물리칠 재간이 우리들에게 있는가.
“아무리 뭐라 해도 여름에는 파리가 있기 마련”이라는 시인 에머슨의 경귀는 새길수록 묘한 여운을 준다. 여름과 파리. 뗄레야 뗄 수 없는 필연의 관계. 부자들이야 그 관계를 어찌 현실적으로 경험하겠는가. 이열치열에 힘은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지만 펄 펄 날뛰는 파리를 힘으로 격파하는 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자주 울렁거리는 우리 정치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정치와 통치는 타협의 기술이라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정치는 불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고 했다.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하며, 동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멀리가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 이열치열로도 버겁은 한국의 여름정치에도 이 정도는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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