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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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최근 정치적인 파장의 여파로 동물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다. 그저께부터 조간신문들도 상당수 만화 난에 정국을 풍자한 동물내용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를 또 종편들이 되받아 분석하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그야말로 법석에 불과하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동물이야기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늘 동물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파리와 모기 등쌀에 아이들이 귀찮아한다. 이를 동물이라고 인식 하기보다는 해충으로 받아들이지만 동물은 동물이다. 개미나 반려동물인 개 혹은 고양이도 늘 화제의 대상이 되고 새나 특이한 애완동물도 많아 동물이야기는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특히 일부 TV의 프로그램은 아예 동물이야기로 담겨 동물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담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렇게 동물은 인간과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실 좁은 의미의 동물이라는 정의는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 짐승이라지만 사람 외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 동물이라고 하면 대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동물’이라는 단어를 앞뒤로 붙여 사용하는 용어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동물농장, 동물의 왕국, 동물들의 싸움, 동물보호, 희귀동물, 동물캐릭터, 동물나라, 동물학대에다 경제동물에 이르기 까지 그 용도는 엄청나다.
그런데 ‘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여기에 ‘인간’이라는 단어를 대입시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동물농장’에 동물대신 인간이라는 단어를 넣어 ‘인간농장’이라 한다거나 ‘희귀동물’을 ‘희귀인간’이나 ‘동물학대’를 ‘인간학대’로 바꿔 본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줄기세포나 유전자조작 등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으로 인륜에 어긋나서는 안 됨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머지않은 미래에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일부의 주장이기는 하다.
참고삼아 우리나라의 동물 수는 얼마나 될까.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의 기록된 동물은 약 1만 8천여 종을 조금 넘는다. 이들 중 곤충이 1만 1천8백여 종이고 척추동물이 1천 1백72종이라는 통계가 있다. 또한 어류는 9백여 종이며 조류는 4백57종으로 조사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저마다의 생존법을 지키며 귀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시인 유치환은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에서 “…벌레가 타이릅니다. 목숨이란 아껴야 하네! 라고. 세상에는 얼마나 복된 교훈이 많은 지요…”라며 동물과 생명의 대비를 이렇게 한 줄로 따끔하게 적었다.
동물들은 비교적 사람을 피한다. 악어나 요즘 말썽을 피운 아마존의 피라니아 같은 것이야 사람을 알 리 없지만 특히 가축 등 길들여진 동물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매우 돈독한 우정을 표한다. 간혹 주인을 물어 죽인 도사 같은 맹견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배신이라기보다는 예외의 경우에 속한다. 애완견에서 반려 견으로 바뀐 요즘에는 개들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행복감을 주는 세태 아인가.
유명한 ‘황무지’의 시인 엘리엇은 “동물은 좋은 친구들이다. 그들은 질문도 하지 않거니와 비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질문 없고 비판 없는 좋은 친구 동물에 대한 역설이다. 그러고 보니 동물에게는 없는 것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동물은 무엇보다 소통하고 사랑하면 동물만큼 사람을 따르는 것도 없지 않을까. 비트겐슈타인도 한마디 했다. “동물은 이름을 부르면 이쪽으로 온다. 사람과 꼭 닮았다”고.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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