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어디서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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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김채한의  사통팔達] 어디서 무엇을곧 장마란다. 제주도부터 시작되는 올 해 첫 장마는 이틀 후면 대구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긴 가뭄을 해갈시켜 줄 것인가. 며칠 전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지역차가 심해 전반적인 가뭄 해갈은 아직 요원하다. 메르스 때문에 메르스 그 외의 다른 분야는 좀체 눈길을 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장마 타령마저 조심스럽다. 정치가 어떻고, 경제·사회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할 요량도 없이 우리 주변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움직여야 하는지 조차 가늠키도 벅차다.
당장 채소 값이 서너 배 뛰었다. 그러니 다른 것이야 말을 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물가나 우리들끼리의 온갖 서민적인 소식이나 들먹이는 것조차도 메르스는 용납을 않는 것 같다. 자칫하면 서로 민망하고, 그러다 악플이 달리면 그것은 매장이나 다름없는 오늘의 추세에 그저 후덥지근할 뿐이다. 오뉴월 더위에는 암소 뿔도 물러 빠진다더니 우리의 올 여름은 왜 이리도 초반부터 왁자지껄할까. 온난화 탓이라고 하면 그만일 테지만.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똑똑하지가 않고 입 속으로만 웅얼거림을 빗댄 말이다. 어저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관과 의원 간의 질문과 대답이 이 속담을 쏙 빼닮은 꼴이어서 쓴 웃음이 나온다. “메르스 34일 동안 국가가 있었나”는 등의 질문에 답하는 장관은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제대로 된 나라에는 제대로 된 당국이나 위정자가 제격인데도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기에 시원한 말을 못하는가.
대신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런 모습을 두고 누리꾼들은 또 시끌벅적이다. 어딘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에 앞서 삼성이 왜 그러지 하면서. 심지어 대국민 사과도 민영화됐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생각이 워낙 빠른 엘리트 집단이라 다음 수순까지 꿰뚫고 있겠지만 무엇이건 화들짝 잘 놀라는 장삼이사들이야 도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 참 어려운 메르스 사태다.
여기다 인기 작가 어느 분의 작품 표절시비까지 생겨 여름장마와 어울리고 있다. 며칠간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 모두에 입방아의 도를 넘는 성토가 이어졌다. 결국 작가는 일주일 만에 “표절문제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굉장히 쉽지 않는 표현으로 표절을 인정했다니 다행일까. 어디서 무엇을 표절 했던지 간에 옛 사람들은 남의 시문 글귀를 따다 고쳐 글을 짓는 사람을 일러 ‘슬갑(膝匣)도둑’이라 했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인데도 슬갑도둑이라니. 참 눈물겨운 느낌이 든다.
아직도 메르스는 진행형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었지만 일부의 주장대로 진정국면이라는 용어 사용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서민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고 경제를 살려야 하는 입장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아끼지 않지만 만에 하나 소홀함이 또 발견된다면 이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늘 직시해야 한다. 아직도 감염경로가 확인이 되지 않는 환자가 다수 아닌가.
엊그제부터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지루한 장마 걷힌 뒤 짓는 밝은 모습과 흡사한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아직 장마는 다가오지 않았다. 벌써 ‘메르스 발생지역으로 휴가를 가자’는 정치권의 발언이 너무 이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라와 정치와 행정과 메르스가 그 어떤 묘한 함수를 지녔음을 읽을 줄 알아야 진정 빠르게 메르스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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