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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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1]

[김채한의  사통팔達] 분노분노의 시대라는 말아 자주 쓰인다. 어느 시대고 분노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이 말은 너무 잘 맞는 말 같다. 왜 우리들은 혹은 그들은 분노할까. 어디에 분노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언제 분노하며, 왜 분노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무척 복잡하고 양태 또한 다양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방치하면 이는 큰 화근이 된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혹은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파열음이 돼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미 하버드대 정신과 전문의들이 펴낸 ‘디퓨징’이란 책이 있다. 디퓨즈란 폭탄 등의 신관을 제거하거나 폭발 직전의 감정을 해제하거나 진정시키다는 뜻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조셉 슈렌드는 “분노를 발산하거나 참을 것이 아니라 해체가 필요하다”며 그 방법론으로 7가지를 제시한다. 그 7가지를 다 합해보면 결국은 한 가지로 집약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식으로 말 한다면 ‘인간답게’ 대하거나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면 분노는 사그라 든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또 가장 쉬운 듯 하면서도 실행이 어려운 ‘서로의 차이’을 인정해 주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인색하다는 것은 든다. 만약 ‘서로의 차이’를 서로 서로 인정하면 공존공영이 가능한 사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화가 나지 않는 법이라며 분노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뀌게 할 수 있지만 존중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바뀌게 하기에 훨씬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요소라는 것.
그만큼 분노는 위협당하거나 해를 입는 개인의 지각에 대한 반응이기에 자칫 방치하면 일반적이거나 심지어 정상적인 감정으로만 치부해 버리기 쉽다. 이로 말미암아 간혹 초조해지거나 말이 거칠어지고 행동 또한 괴팍해질 때 폭력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이 넘치는 경우도 있어 물의가 빚어진다. 그래서 분노를 잘 살피는 일도 탄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살기가 자꾸 팍팍해지면 분노는 어느 틈에 우리들 곁에 와 있다. 이게 자꾸 쌓이다보면 괜시리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힐듯하며, 막무가내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속에서는 뜨거운 뭉치가 펄펄 끓고 치미는 그 무엇이 가만있게 놔두지를 않는다. 쉽게 말하면 홧병이다. 화를 삭이지 못하면 불안 절망 우울과 더불어 분노가 치민다. 그 결과는 간혹 아무도 예측 못한 구석에서 우리들을 망치게 한다.
그렇지만 세상이 너무 냉담하거나 무심해도 탈이다. 하라는 대로 복종하고 아무런 의식 없이 앞 사람만 따라가는 무사안일에서도 우리들의 삶은 결코 아름답고 행복하지는 않다. 서로 인정해 주는 ‘서로의 차이’가 없는 그야말로 무개념의 세상에서는 살맛이 없다. 나치 독일 시절의 목사 마르틴 니묄러는 ‘다음엔 우리다’란 시에서 사회적 분노의 필요성을 노래했다. 공산당도 유태인도 노동조합도 가톨릭신자도 아니어서 늘 그럴 때 마다 침묵했지만 결국 마지막 연에서 읊었듯이 ‘그 다음엔 나에게로 왔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며 절규한다.
세월호참사, 메르스공포, 낙마를 거듭했던 총리직, 뇌물, 수천억씩 회사돈을 손해 끼친 철면피들, 묻지마 살인, 보복에 물든 차량운전자들, 책임없는 의원들 등.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우리를 분노케 하는 요인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 모두가 ‘인간에 대한 존중’ 하나만 지켜도 능히 막을 수 있는 분노들이다.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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