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통팔達] 개혁을 개혁 않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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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김채한의  사통팔達] 개혁을 개혁 않고는개혁. 그게 뭘까? 낡은 제도를 새롭게 고치거나 정치제도나 사회제도 등을 합법적 혹은 점진적으로 새롭게 고쳐 나가는 사전적 의미뿐일까. 그래서 다들 개혁 개혁하며 마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며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개혁하고,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개혁하자며 주위를 부추긴다. 개혁에는 배알이 없는 셈이다. 그게 전부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에게는 개혁에 대한 맹신만 있고 그게 만병통치약으로 대접받아 온 것이다.
몽테뉴의 개혁은 정말 간단하다. 그는 ‘수상록’에서 “비뚤어진 지팡이를 똑바로 하기 위해서는 반대 방향으로 굽혀야 한다”고 했다. 이 구절을 음미할수록 ‘야 개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감탄하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들은 그러나 의외로 적다. 이미 복잡하게 짜여 진 정치나 사회 구도 속에서는 더 더구나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첫 머리를 찾아 풀어 간다는 게 여간 귀찮고 쉽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그런 번거롭게 절차를 밟아 긁어 부스럼 일으킬 일을 하랴. 개혁은 그저 입으로만 부르짖으면 되는 일을. 아무도 부르짖은 개혁에 대해 검증이나 사실조사를 하지 않는 마당에. 설사 검증이나 조사 절차를 밟는다 해도 또 다시 개혁을 부르짖으면 앞의 것들은 죄다 없었던 것이나 진배없는 현실에서 개혁은 그저 구호의 개혁으로만 그치기 일쑤다.
개혁을 개혁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철저한 이기주의가 배후에 늘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입에 달고 사는 위정자들이나 지도층들은 흔히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를 분간하지 못하고 편리한대로 섞어 이야기 한다. 일테면 사회적 속박으로 부터의 해방을 내 세우면서 ‘이웃집의 불보다는 내 집 연기가 좋다’며 개인주의를 자기소유로 착각하기 때문에 개혁을 개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 고려대 김정흠교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자기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할 때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도 꼭 같이 존중하는데 비해서, 이기주의는 자기의 권리와 자유만을 주장하고 딴사람의 의견이나 권리나 자유를 묵살하는 주의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는 가슴이 뜨끔해야 할 사람들이 요즘 많을 텐데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개혁을 부르짖으며 그만이기 때문이다. 개혁이 개혁을 감춰 주는 역할에 맛을 너무 들인 탓이다.
새 총리에 대한 인준작업이 곧 시작된다. 당연히 개혁을 주도할 인물이어야 한다는 잣대에는 변함이 없다. 두어 달 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재산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시대의 개혁자들을 정의할 때 재산이 많아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에 다들 한바탕 헛웃음을 친 적이 있다. 그러니 총리를 고르는데 100여명이 물망에 올랐지만 진흙구덩이를 방불케 했다는 여담은 오늘의 개혁이 얼마나 험준하고 아득한가를 보여 준다고나 할까.
어느 시대고 개혁은 힘들다. 인간애가 넘치는 필치로 늘 감동을 주는 해즐릿은 “개혁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것이 결코 성공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개혁이 성공을 하면 더 이상 개혁할 것이 없다는 말일까. 그만큼 개혁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다. 국회도 지금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지만 그런 개혁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루스벨트는 “모든 개혁운동에는 광적인 패거리가 있다”고 했다. 광적인 패거리들 또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켜볼 일이다.



칼럼니스트·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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