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기자의 사건파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20년, 밝혀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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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우철원(당시 13), 조호연(12), 김영규(11), 박찬인(10), 김종식군(9) 등 5명의 어린이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자락으로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 실종된 지 11년여 만에 모두 유골로 발견된 비극적 사건이다.


◆ 유골로 돌아온 개구리 소년들

 

기자는 1996년 1월, 3년차 경찰 출입기자 시절 이 사건을 처음 만났다. 당시 김가원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범인은 다섯 어린이의 부모 가운데 한 명이며 살해한 뒤 자신의 집 부근에 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고 세상의 관심은 온통 거기로 쏠렸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라 경찰의 대규모 발굴 작업이 이뤄졌지만 허탕으로 끝났고 김 교수는 분개한 실종 소년의 가족들에게 쫓겨 도망치다시피 현장을 떠났다.
이후 2년 동안 세 번에 걸쳐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한 기사를 썼다. 1996년, 1997년, 1998년 3월 25일 즈음이다. 실종된 날에 맞춰 사건을 재조명하고, 부모들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전했다. 매번 되풀이된 건 “열심히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 올 것”이라는 경찰의 말과 “초동수사 부실에 따른 수사 혼선이 사건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부모들의 주장이었다.
이 사건에 다시 만난 것은 발생 11년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자락에 묻혀있던 소년들의 유골이 한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을 때다. 그때 기자는 잠시 신문사를 그만두고 있던 시절이었다. 후배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다 유골 발견소식을 듣고는 다시 ‘기자’가 되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사를 쓸 지면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취재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이미 웅덩이 한 곳에 모여 있던 유골을 밖으로 꺼내 퍼즐 맞추듯, 비슷한 유골들끼리 조합하고 있었다. 경찰 스스로 현장을 완전히 훼손한 것이다.
경찰은 유골 발견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저체온에 의한 자연사’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언론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했다. 결국 경북대법의학 교실이 타살로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국은 들끓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들불처럼 일어났다.
경찰은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뒤 또 다시 연인원 1만9,000여명을 동원해 주변 주민과 상인 등 1,200여명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했고, 범행도구를 밝혀내기 위해 낚시와 등산용품점 등 1,000여곳을 조사했다. 사건 수사를 위해 수개월동안 법의학자, 법치의학자는 물론 법곤충학자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문가 등 많은 전문가를 동원했다. 하지만 범인 검거는 물론 범행도구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결국 개구리소년 5명의 유족들은 사건 해결을 보지 못한 채 2004년 3월26일 이들의 장례식을 치렀다.

 

◆ 반인륜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 대두


경찰은 개소리소년 실종사건 수사에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2만여명을 투입했고 가출이나 아사, 익사, 납치 등 여러 가능성에 대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또 이들의 실종을 소재로 한 노래와 영화가 등장했는가 하면 전국적으로 800여만장의 전단이 뿌려지고, 시민모금과 기업 등의 출연으로 수천만원의 신고보상금이 내걸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년들의 유족들은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다 전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소년들이 타살된 것으로 결론 났지만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2006년 3월25일 자정을 기해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더 흘러 사건 발생 20년을 맞게 됐다. 특히 지난 2월 17일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족들은 지금도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폐지와 민간조사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이 사건을 지켜 본 기자는 ‘실종’과 ‘공소시효’라는 두 단어를 떠올려 본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된 실종아동의 수는 2007년 403명에서 2010년 436명으로 늘었다. 다행히도 그 중 대부분은 단순 가출이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아동이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등록된 14세 미만 장기 실종아동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93명에 이른다. 대구·경북에는 8명이다.
아동실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2008년 경찰은 각 서마다 ‘실종 전담수사팀’을 꾸려 실종아동이 발생함과 동시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입력하고 경찰 전산망에 수배를 내리는 등 신속한 초기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도 실종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좀 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법적 장치 강화’와 ‘현실적인 예방책 마련’이 그것이다.
공소시효의 존재 이유는 ▶시간 경과에 따른 피해자의 감정 순화와 사회의 응보감정의 약화 ▶범행 후 오랜 시일이 지나 증거가 사라져 진실 발견이 어렵고 ▶범죄인의 도피생활 등 스스로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았으며 ▶가해자는 공소시효 기간 동안 수많은 법률관계를 맺을 것이므로 불시의 기소에 의한 법적 안정성의 침해 등이 꼽힌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근거들에 대한 반박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자의 감정이 더욱 강해지기도 하며, 과거와 달리 유전자(DNA) 보존이나 과학적 분석기법이 발달돼 시간의 흐름에도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간만 지나면 어떤 잔인한 범죄에도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사실이 보통 사람들의 법감정과 부함하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반인륜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 형사소송법의 모델이 된 일본의 형사소송법은 지난해 4월, 살인 등 중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자체를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그러나 지금 개구리소년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다 해도, 법 개정 이전에 범한 죄에 해당되어 처벌을 할 수는 없다.
지난달 23일 고 우철원군의 아버지 종우씨는 서울 동대문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고, 유골이 발견된 후 한줌 흙으로 돌려보내면서는 꼭 범인을 잡아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겠노라고 입술을 깨물며 약속했는데 공소시효 만료로 흉악무도한 범인을 잡지도 못한 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파괴하는 끝없는 고통을 가족들에게 대물림시키는 반인륜 범죄자에게 더 이상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일지


▶ 1991.3.26=우철원군 등 개구리 잡으러 간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 실종사건 발생…경찰 수사 착수, 현상금 4천여만원
▶ 1992.8=경찰 실종 소년들 나환자 정착촌 암매장 제보 접수…현장조사 결과 허위제보로 판명
▶ 1992.11=실종사건을 영화화한 조금환 감독의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 개봉
▶ 1993.1=실종자 부모들 김영삼 당시 대통령 당선자에게 탄원서 제출
▶ 1993.11=경찰청,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연구팀을 구성해 사건을 원점부터 재분석하는 등 수사 강화
▶ 1995.7=경찰 명지대학교의 도움을 받아 개구리소년 5명의 변모된 얼굴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생시킨 전단 2만여장을 제작, 전국 경찰에 배포
▶ 1996.1=한국과학기술원 심리학자인 김가원 교수가 실종 어린이들이 김종식군의 집 주변에 묻혀 있다는 주장을 펴 경찰이 김군의 집 화장실과 보일러실 등에서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단서 못 찾고 해프닝으로 종결
▶ 1996.5=대구지방경찰청 수사본부 해체…대구 달서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체제로 전환
▶ 1997.8=40대 여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개구리소년들을 유인, 암매장했다고 진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허위진술로 판명
▶ 2001.7=전남 신안군 지도면 증도 한 염전에서 제보...경찰 현지 급파, 허위로 판명
▶ 2002.9.26=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에서 유골 4구와 신발 5켤레 발견
▶ 2002.11.12=경북대 법의학팀 개구리소년 사망원인 ‘타살’로 잠정 결론
▶ 2004.3.26=개구리소년 5명 경북대병원 영안실서 합동 장례식
▶ 2005.11.15=심리학박사 김가원씨 개구리소년 추적기 담은 실화소설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 출간
▶ 2005.11.28=개구리소년 유족들 국회서 ‘공소시효 연장·폐지’촉구 기자회견
▶ 2006.3.25=개구리소년 실종사건 공소시효 만료(15년)

 

 

 

 

 


 

<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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