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68. 소학세향·소학세가 한훤당 종택

1) 프롤로그


지난번에 우리는 대니산 남쪽 솔례마을에 자리한 현풍곽씨 솔례종택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풍곽씨와 더불어 ‘현풍8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서흥김씨 문중의 한훤당 종택 역시 솔례 인근에 있다. 솔례와는 작은 산줄기 하나를 사이에 둔 못골이라는 마을에 있는데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그곳에 현풍의 서흥김씨 종택, 정확하게 말하면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종택이 있다.   

     

2) 서흥김씨 대구입향 내력

서흥김씨(瑞興金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 조에서 중낭장을 지낸 김보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김천록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 토벌과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서 큰 공훈을 세운 인물이다. 그 공으로 광정대부 도첨의시랑 찬성사상장군 판판도사사에 오르고 서흥군에 봉군되었다. 이를 연유로 그의 후손들은 서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천록의 현손 대에 이르러 서흥김씨는 3개 파로 분파된다. 김중건은 경기파, 김중곤은 영남파·호남파·해남파, 김중인은 초계파의 파조가 되는데 이들은 형제간이다. 서흥김씨 대구 입향조는 세종 조에서 통정대부 예조참의를 지낸 영남파 파조 김중곤이다. 그가 현풍의 솔례곽씨 문중으로 장가를 들면서 서울 정릉을 떠나 처향인 솔례로 내려온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서흥김씨들은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를 거쳐 지금의 못골에 정착하여 세거지를 형성했다. 
     
3) 못이 있어 못골이라

솔례와 못골의 갈림길에 ‘현풍곽씨12정려각’과 용흥지라는 아담한 못이 하나 있다. 용흥지를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솔례마을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못골이다. 못골은 한자로 지동(池洞)인데 글자 그대로 못이 있는 동네란 뜻이다. 우리네 전통마을들 중에는 마을입구에 마을연못이나 마을숲이 조성된 예가 많다. 이는 풍수지리 또는 무속적인 이유 때문인데 그 이유가 하나같이 흥미롭다. 못골 역시 마을 초입에 마을연못과 마을숲이 있다. 마을연못을 조성한 것은 풍수적인 이유 때문이다. 마을의 지형이 나비를 닮은 형국이라 나비가 좋아하는 물을 가까이에 두기 위해 연못을 팠다는 것이다. 마을숲은 좋은 기운은 갈무리하고 나쁜 기운은 막는다는 풍수적 기능과 함께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의 대상이 되는 당산숲·당산나무의 기능을 한다. 참고로 못골의 마을연못은 우리네 전통 연못조성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흔히 방지원도(方池圓島)라고 하는 것으로 사각형의 연못 가운데 원형의 섬이 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동양의 전통사상을 연못에다 투영한 것이다. 한훤당 종택 안에도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역시 방지원도로 조성되어 있다. 

4) 못골 한훤당 종택의 내력    

    
종택 솟을대문 앞 표지석에 ‘한훤고택’이라 택호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정작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이 집에 거주한 사실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훤고택은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무려 275년 뒤인 1779년(정조 3)에 건립된 집이기 때문이다. 이 집은 선생의 11세손인 김정제(金鼎濟)라는 인물이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에서 못골로 이거하면서 건립한 것이다. 본래 못골에는 수원백씨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한훤당 종택이 옮겨온 이후부터 서서히 서흥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훤고택은 크게 4개 공간으로 구분된다. 생활공간인 ‘정침’과 제향공간인 ‘광제헌’과 ‘불천위사당’ 그리고 ‘카페’ 공간이 그것이다. 한훤고택도 솔례종택처럼 6.25한국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불천위사당, 대문채, 광채는 피해를 입지 않았고, 나머지 정침, 광제헌 등은 소실 후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한훤고택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정침 곧 안채다. 솟을대문과 이 안채 사이에 옛날에는 중사랑채가 있었는데 6.25때 사라지고 아직까지 복원을 하지 못한 상태다.

5) 불천위 사당과 광제헌

한훤고택 불천위 사당은 안채 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으로 반 칸 툇간을 둔 개방형 사당으로 불천위 사당에 걸맞게 단청이 칠해져 있다. 신주는 북벽 중앙에 김굉필 선생의 불천위 신주가 놓여 있고 동쪽 벽에 고조·조, 서쪽 벽에 증조·고의 신주가 놓여 있는 소목법을 취하고 있다. 이 사당은 나라의 명으로 건립된 것으로 1615년(광해군 7) 현풍현감 허길의 감독 하에 처음 도동리에 세워졌다가 이후 지금의 못골로 이건된 것이다.
한편 정침을 마주보고 섰을 때 좌측에 제청인 광제헌이 있다. 광제헌은 정면 6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 좌우 나머지 3칸은 방이다. 건물 전면 처마에는 한훤고택, 대청 북벽에는 소학세가(小學世家) 편액이 걸려 있다. 광제헌은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유가에서 나온 말로 황정견이라는 인물이 염계 주돈이 선생의 인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주돈이의 인품이 고상하고 마음이 대범한 것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갠 날의 달과 같다.             ]
 
6) 에필로그

현풍권 답사에 있어 ‘현풍곽씨12정려각’은 필수코스다. 그런데 대부분의 답사객들은 정려각만 보고 이곳을 떠난다. 걸어 5-10분 거리에 현풍곽씨 솔례종택과 한훤고택이 있는데도 말이다. 최근 한훤고택 뜰에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퓨전카페가 생겼다. 평소 출입이 부담스러웠던 종택 뜰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종택을 둘러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역시 전통과 현대는 서로 만나야 멋스러워지는가 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