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61. 물을 바라보다, 관수정

1) 프롤로그


도동서원이 자리한 달성군 구지면 도동1리. 이 마을 뒤편 언덕 위에는 고색 찬연한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의 이름은 ‘관수정(觀水亭)’이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5대손인 김대진이라는 인물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번에는 도동서원 바로 옆 언덕위에 자리한 한 정자에 대한 이야기다.

2) 사우당(四友堂) 김대진(金大振)
관수정 입구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관수정의 내력을 잘 정리해 놓았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한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관수정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6호, 소재지: 구지면 도동65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함께 공을 세운 사우당 김대진 선생이 경상도 감사 이민구와 향토사림의 협조를 받아 1624년(인조 2) 건립하였으나, 1721년(경종 1)에 없어졌다. 1866년(고종 3)에 후손 김규한이 다시 지었으며, 맹자가 말한 “원천에 근본이 있고 반드시 그 하류의 물결을 본다.”는 의미에서 관수정이라고 하였다고 중건지에 적고 있다. 건물은 주위와 자연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각 건물의 비례구성이 돋보여 단정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건물에 사용된 부재의 치수가 비교적 넉넉하고 치목수법이 치밀하고, 결구상태가 견실하여 지금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관수정의 주인 김대진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5대 종손이다. 아버지는 김응복이며, 첫째 어머니는 파평윤씨 윤언호의 따님, 둘째 어머니는 청주한씨 한영의 따님이다. 자는 이원, 호는 사우당이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 의병진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39세 때인 1609년(광해군 1)에 생원시에 올랐다. 벼슬로는 경기전 참봉·봉사·직장을 지냈고, 김천찰방으로 있을 때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도동리 낙동강가로 낙향, 관수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3) 물을 바라보는 집, 관수정

관수정 앞뜰에는 노거수 한 그루가 서 있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한 눈에 회화나무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생긴 나무다. 고색 찬연한 정자와 회화나무 노거수의 조합. 관수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건물임을 알려주는 조합이다.
사실 관수정도 회화나무 못지않게 잘생겼다. 첫인상이 마치 누런 삼베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선비, 또는 베이지계통의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눌러쓴 영국 신사 같은 느낌이다. 관수정은 정면 5칸·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면 좌에서부터 2칸 방·2칸 대청·1칸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으로 반 칸 툇간이 있다. 필자의 눈에 관수정은 정말 잘생긴 전통한옥으로 보인다. 첫 대면 때부터 그랬다. 이는 건물의 상하좌우 비율이 안정감을 주는 최적의 황금비율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와 동시에 관수정 지붕처마에 적용된 ‘방구매기’ 기법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방구매기는 지붕처마의 네 모서리가 건물의 중심 쪽으로 오목하게 휘어들어가지 않고, 반대로 바깥으로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오게 처리하는 건축기법이다. 이는 초가지붕에서 흔히 나타나는 양식인데 아주 극히 드물게는 기와지붕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의 지붕처마를 들 수 있다.
관수정이라는 이름은 『맹자』에서 가져온 말이다. 『맹자』 「진심장상」에 나오는 ‘관수유술(觀水有術) 필관기란(必觀其瀾)’이 그것이다. 물을 바라볼 때는 그 물결치는 것을 보고 물의 근원을 깨달으라는 의미로, 세상사 모든 일은 지엽말단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이 늘 물을 가까이하고 관조한 것은 바로 이 물을 바라보는 방법, ‘관수유술 필관기란’에 연유한 것이다.

4) 관수정 중수를 노래하다

대부분의 전통건축물들은 대청에 창건기문·중수기문 같은 현판들이 게시되어 있다. 이는 창건 또는 중수 당시에 쓰진 글이기에 건물의 내력을 알아보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데 종종 여기에 시가 더해지기도 한다. 현재 관수정에 걸린 세 개의 시판이 좋은 예다. 이들 세 개의 시판은 모두 관수정의 중수를 노래한 시다.
관수정 중수 원운은 김대진의 8세손이자 관수정을 중수한 김규한의 시이며, 나머지 두 개의 차운시는 각각 성재 허전과 한주 이진상의 시이다. 김규한은 시를 통해 자신의 선조인 김대진이 학문적 연원은 김굉필에 닿아 있고, 수학은 장현광에게 했으며,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한 뒤 도동서원 곁에 관수정을 지어, 고향 도동을 더욱 빛나게 했음을 노래했다. 허전의 시는 김규한의 시에 대한 화답시로 김굉필, 장현광, 김대진 세 인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도동 서흥김씨 문중의 번영을 노래했다. 이진상의 시 역시 김대진이 장현광의 문인임을 밝히고, 도동리의 자연경관과 함께 이 지역 명문인 서흥김씨 문중을 칭송하고 있다.

5) 에필로그

다람재와 도동서원 사이 산 중턱에 ‘정수암(淨水庵)’이 있다. 이곳은 김굉필 선생 이하 3대가 대를 이어 여묘살이를 한 유적으로 1626년(인조 4)에 중수하여 지금은 불교 암자가 되어 있다. 또한 정수암을 중수한 그 해에 도동서원 앞에 김굉필 선생의 신도비도 세워졌다. 이 두 가지 사업은 모두 관수정의 주인 사우당 김대진이 추진한 일들이다. 이처럼 조상을 현창하는 사업에 앞장섰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관련 유물들이 모두 화마에 피해를 입어 현재는 전하는 바가 거의 없다. 꽃피는 봄이다. 이 좋은 계절에 도동리 낙동강가를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 도동서원도 좋고 관수정도 좋고 정수암도 좋다. 이 좋은 계절이 다 지나기 전에 꼭 한번 다녀오자.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