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아, 이 순신 장군

이 순신 장군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창의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순신 장군에 관한 많은 기록과 책이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김 종대 지음, 시루 펴냄, 2012)는 왜 이 순신 장군이 오늘날까지 위대한 장군으로 칭송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발명됨으로써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비록 육지 전투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해상 전투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다. 조선 수군이 포(砲)로 무장한 ‘거북선’이라는 신기한 전선을 이용해 조총의 위력을 반감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북선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날짜별로 살펴보면 하늘이 짓궂게도 조총을 든 왜적의 침략과 이 순신의 새 전함인 거북선의 완성을 두고 마치 경쟁이라도 시킨 듯한 느낌이 든다. 전쟁 발발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 순신이 1년 동안 전심전력을 다한 끝에 전쟁 하루 전날에야 가까스로 거북선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시기와 거북선이 완성된 시기를 날짜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순신은 수개월에 걸쳐 부하 장수들을 독려하여 몸체를 만들고 나서 곧바로 거북선에 달 돛베 29필을 받아들였다. 그날은 임진년 2월 8일로 전쟁 발발 64일 전이다. 거북선에서 처음 포 쏘기를 시험한 날은 3월 27일로 전쟁 15일 전이고 거북선에 돛베를 만들어 단 날은 4월 11일로 전쟁 이틀 전이다. 마지막으로 거북선 안에서 지자대포와 현자대포를 시험 발사한 날은 4월 12일로 이는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이다. 거북선에서 발사된 대포는 폭음과 함께 과녁을 명중시켰고 포격에 따른 반발력과 진동을 흔들림 없이 거뜬하게 흡수했다. 신기하게도 전쟁 하루 전 날 무적 전함 거북선이 성공적으로 건조된 것이다. 만약 그날까지도 거북선이 완성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 수행 중에도 건조 실험을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임진년에는 그 완성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때 거북선을 만들어 쓰지 못했다면 이 순신은 어찌 임진년 4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할 수가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창제했다고 해도 거북선이란 배가 임진년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순신이 거북선이라는 이름을 쓰기 무려 180년 전에 이미 같은 이름의 전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18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군사상 전통과 담당 기구조차 무너져서 거북선은 단지 이름으로만 전해지고 있었다. 이 순신이 전통을 되살리고 과학적인 연구로 새로운 구상을 덧붙여 거북선을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하게 되었다.
거북선을 이 순신이 만들었다고 해서 혼자 힘으로 완성한 것은 아니다. 나대용 같은 조선 기술을 겸비한 걸출한 장수의 도움과 수많은 전문 인력의 협력이 없었다면 거북선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선을 이 순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 순신이라는 창의적인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공로의 으뜸을 논하기로 이 순신이 첫 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구용회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