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93. 논공 3대 늪 씩실늪, 위천늪, 낫늪

1) 프롤로그
최근 생태관광자원이 인기다. 우리지역에서는 낙동강변에 형성된 습지를 중심으로 한 물생태관광자원이 인기다. 낙동강·금호강·진천천이 만나는 달성군 화원유원지에서 달서구 성서공단 인근 금호강변까지 이어진 달성습지, 성서공단과 금호강 사이에 자리한 대명유수지가 대표적이다. 특히 대명유수지는 올 한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명실상부 대구를 대표하는 물생태관광 핫플레이스가 됐다. 그런데 낙동강을 끼고 있는 우리지역에는 이곳 말고도 타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소중한 물생태관광자원이 있다. 바로 ‘늪’이다. 논공읍 3대 늪이라 할 수 있는 삼리리 씩실늪, 위천리 위천늪, 상리 낫늪이 그것이다.

낙동강과 평행으로 형성된 논공 3대 늪

2) 물 고인 얕은 호수, 늪
습지와 늪은 비슷한 듯 차이가 있다. 이 둘은 강 하류 혹은 물줄기가 크게 곡류하는 강변에 잘 나타나고, 홍수 등 강물 범람으로 형성된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 둘은 차이도 있다. 습지는 강에 접해있고, 늪은 강에서 조금 떨어진 육지에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습지는 강과 경계가 없으며, 강물이 적을 때는 물이 있는 둥 없는 둥하다가 수량이 늘면 강물로 가득 찬다. 이에 반해 늪은 기본적으로 자연제방이나 인공제방에 의해 강과 분리되어 있고, 항상 물이 고여 있다. 다만 수심이 3m 이내로 얕고 흙과 수생식물이 많은 물웅덩이라는 면에서는 못이나 호수와는 구분된다.
늪은 호수와는 달리 수심이 얕아 햇빛이 늪 바닥까지 비치기 때문에 바닥까지 수생식물이 빼곡하게 자라고, 생물의 사채 같은 유기물이 많다. 이런 까닭에 늪은 못이나 호수에 비해 부영양화가 심하고 물색이 탁하다는 특징이 있다. 호수의 변천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늪은 최종단계인 습지로 변하기 바로 전 단계라 할 수 있다.

늦가을 씩실늪 모습

3) 삼리리 씩실마을 씩실늪
달성군 옥포읍과 논공읍은 각각 북쪽과 서쪽이 낙동강에 접해 있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낙동강은 ‘C’자형으로 크게 굽어 흐르는데 그 규모가 낙동강 본류 전 구간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그래서 이 곡류구간 안쪽으로 옥공들[마갯들], 위천들, 선망들 같은 넓은 범람원과 씩실늪·위천늪·낫늪 같은 배후습지가 잘 형성되어 있다.
씩실늪은 삼리리 씩실마을과 낙동강 사이에 있는 늪이다. 마을 북서쪽에 낙동강이 있고 낙동강과 마을 사이에 폭이 500m에 이르는 넓은 씩실들이 있으며, 씩실들과 마을 사이에 씩실늪이 있다. 씩실늪은 마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와 평행방향으로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씩실늪 규모는 길이 약 1.4㎞, 폭 약 90m, 수심 약 1m, 면적 약 77,500㎡ 정도다. 늪 가운데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삼리리와 씩실들을 오가는 다리다. 씩실 늪은 6·25 한국전쟁과도 관련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다음은 최근 발간된 『논공읍지』(2021) 「구비전승설화」편에 소개된 ‘씩실늪과 6·25전쟁’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1950년 7월 말~8월 초쯤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대구를 중심으로 낙동강에 배수진을 쳤다. 삼리리 낙동강변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이 지역 낙동강 수심은 옷을 걷고 건너다니거나 목욕을 하면서 이쪽저쪽을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씩실늪은 달랐다. 늪 북쪽 큰 바위[덤떵바우·뚱뚱바우] 아래에 수심이 깊은 소가 있었다. 마을 구전에 의하면 씩실늪 소 아래에는 큰 굴이 있는데 명주 구리실을 다 풀어도 실 끝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날 밤이었다. 강 건너 고령에 주둔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 본류를 무사히 건넌 인민군은 씩실늪을 우습게 봤다. 하지만 씩실늪은 낙동강 본류와는 완전히 달랐다. 2~3m가 넘는 수심도 수심이지만 인민군이 도하를 시도한 씩실늪 북쪽사면과 마을이 있는 남쪽사면은 지형조건이 완전히 달랐다. 남쪽사면은 늪 주변 경사가 완만했지만, 북쪽은 경사도 가팔랐고 흙 또한 찰흙이라 물이 묻으면 마치 기름을 바른 듯 미끄러웠다. 이러한 사정을 몰랐던 인민군은 씩실늪을 건너다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6·25한국전쟁 이후에도 한 동안 씩실늪에서는 인민군이 사용한 장총이 발견되기도 했다.

4) 위천리 위천늪[원등늪]
위천리는 대구·현풍·고령 세 지역으로 연결되는 길이 만나는 위천 삼거리에 자리한 마을이다. 자연부락으로는 위나리[우나리·위진]와 원등[윈띵·삼거리]이 있고, 과거에는 이곳에 도진[멍덕미]나루가 있었다. 도진이라는 이름은 강 건너 고령 운수면 사부리와 성산면 기산리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이곳을 통해 들어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위천리 낙동강변은 오랫동안 불모지였으나 1991년 제방이 생기면서 지금과 같은 옥토 위천들로 바뀌었다.
위천늪은 인근 원등마을 이름을 따 ‘원등늪’이라고도 한다. 씩실늪에서 남쪽으로 700m 정도 떨어진 위천들에 있는데, 모양이 마치 오이처럼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겼다. 길이는 남북으로 약 400m, 폭은 넓은 곳이 약 50m, 좁은 곳은 5~10m쯤 된다. 위천늪에도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전한다. 위천리에서 구전되는 전설에 의하면 씩실늪과 위천늪 사이 땅속에는 이무기가 다니는 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위천늪에서는 목욕을 하지 않았고, 배가 뒤집히거나 익사 사고가 나도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무기가 사람을 물고 가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늪 수심이 1m 내외지만 예전에는 깊었다고 한다.

5) 상리 낫늪[걸미늪]
위천늪에서 남쪽으로 약 400m 거리에 낫늪이 있다. 위천리와 고령 득성리를 잇는 성산대교를 기준으로 하면 북쪽 약 3000m 지점에 위천늪, 남쪽 약 100m 지점에 낫늪이 있다. 낫늪은 인근에 자리한 자연부락 걸미마을 이름을 따서 ‘걸미늪’이라고도 한다. 걸미늪 역시 이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과 평행인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길쭉하게 형성되어 있다. 길이 약 600m, 폭은 70m 쯤 된다.

6) 에필로그
현재 논공읍 3대 늪은 수질이 좋지 않다. 늪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빛이 탁한 것과 수질이 나쁜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40~50년 전만 해도 이들 늪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씩실늪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물을 그냥 떠서 마실 정도로 수질이 좋아 부족했던 마을 우물을 대신했다고 한다. 또 늪에서는 빨래도 했고, 늪 위쪽에서는 남자들이 목욕을 하고, 얕은 곳에서는 낮에는 아이들이 밤에는 부녀자들이 목욕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낙동강 제방이 생기기 전, 씩실늪은 홍수가 나면 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이 때문에 씩실늪에는 민물고기와 조개 등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도의 지원을 받아 씩실늪에 양어장을 개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 곳 늪 모두 수질이 좋지 않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