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91. 도동서원 정료대와 성생단

1) 프롤로그
지난주에 이어 도동서원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야겠다. 도동서원에는 크게 두 가지 볼거리가 있다. 하나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이요, 다른 하나는 도동서원 수월루 앞에 있는 수령 4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다. 평소에도 볼만하지만 특히 이맘때인 매년 11월 초·중순 경, 황금빛으로 물든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그야말로 장관이다.[도동서원에서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현재 단풍이 절정이다. 2021.11.9.] 위드 코로나 분위기에다 은행나무 단풍까지 절정이라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해설요청도 많다. 이번에는 오늘 해설사 근무 중에 만난 충청북도 ‘증평 역사교실모임’ 회원들이 관심을 보였던 도동서원 정료대와 성생단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이 둘은 모양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다.

강당과 뜰을 밝히는 정료대

2) 뜰을 밝히다, ‘정료대’
정료대(庭燎臺). 한자를 먼저 보자. 정(庭)은 뜰이나 마당, 료(燎)는 횃불 또는 비추다, 대(臺)는 물건을 얹는 대를 말한다.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답이 나온다. ‘뜰을 비추는 횃불을 얹는 대’. 과거 전기가 없던 시절, 옛 사람들은 호롱불이나 횃불 등으로 어둠을 밝혔다. 실내에서는 호롱불을 사용하고 실외에서는 그 보다 큰 횃불을 썼다. 서원이나 사찰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고, 밤에도 이동할 일이나 의례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료대는 주요건물 앞뜰에 설치해 건물과 뜰을 밝혔다. 사찰은 주로 대웅전 앞, 서원은 강당 앞에 정료대를 설치했다.
정료대 관련해 이런 주장도 있다.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듯이, 한 서원 안에 두 개의 정료대는 세우지 않는다” 어떤 근거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 서원 답사를 다녀보면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동서원의 경우도 그렇다. 정료대는 강당인 중정당 대청 앞에 한 개만 있다. 다만 정료대처럼 조명시설로 사용했던 석조물은 하나 더 있다. 도동서원 사당 뜰에 있는 석등이 그것이다. 정료대와 석등은 둘 다 불을 밝히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생긴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정료대는 돌기둥 위에 아무런 장치 없이 불씨를 올려두는 평평한 대만 있는 반면, 석등은 기둥 위에 화사석火舍石이라고 하는 불씨를 넣어두는 일종의 불씨집이 있다. 서원 제사인 향사는 지금도 컴컴한 새벽, 강당과 사당에서 행해진다. 따라서 강당 앞에 있는 정료대와는 별개로 사당 뜰을 밝힐 수 있는 석등이 필요했던 것. 사찰도 마찬가지다. 정료대는 정료대대로 석등은 석등대로 각자 나름의 의미와 용도를 가지고 제 위치에 서있다.

희생을 살피고 검사하는 성생단

3) 희생을 검사하는 단, ‘성생단’
도동서원 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뒤편 사당으로 가는 길에 정료대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또 하나 있다. 정료대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돌로 만든 것도 그렇고 기둥 위쪽에 육면체 단을 올려놓은 것도 그렇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정료대는 기둥과 단의 표면이 잘 다듬어져 있는 반면, 이것은 표면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칠다. 도대체 이 돌은 무엇일까? 이 돌의 정체는 성생단이다.
성생단(省牲壇) 역시 한자를 한 번 보자. 성(省)은 살피다, 생(牲)은 제물로 쓰이는 희생, 단(壇)은 주변보다 높게 쌓은 구조물을 말한다. 이 세 글자를 조합하면 이렇다. ‘희생을 살피는 단’. 서원에서는 1년에 두 번 큰 제사를 지낸다. 이를 특별히 향사라 한다. 향사 때는 여러 제수가 올라간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제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천양지차다. 가장 큰 차이는 향사 제상에는 밥·국·수저가 올라가지 않고, 열을 가해 익힌 제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제수를 담는 제기의 모양도 완전히 다르다.
제수 중에는 특별히 ‘희생’이라 불리는 제수가 있다. 희생은 제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수인데 서원 향사에는 돼지를 쓴다. 희생이 워낙 중요한 제수인 만큼 희생을 잡기 전에 희생을 살피고 검사하는 의식이 있다. 이를 ‘성생례’ 혹은 ‘감생례’라 한다.[요즘은 서원에서의 도살이 불법이기 때문에 도살장에서 잡아온 돼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서원마다 성생례와 성생례를 거친 희생을 어떻게 장만해 제상에 올리느냐는 서원마다 좀 다르다. 최근 도동서원에서는 도살장에서 잡은 돼지를 생돼지 상태 그대로 성생단 위에 올려놓고 성생례를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살아있는 돼지를 성생단 주변에 묶어 두고 성생례를 했다.

4) 제수의 네 유형, ‘혈·성·섬·숙’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서원 향사와 일반 가정의 제사 상차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서원 향사에서는 희생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그대로 제상에 올린다. 도동서원에서는 희생의 몸통을 좌우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한훤당 김굉필[오른쪽 부분], 한강 정구 두 선생께 올린다.[참고로 안동 도산서원은 상하로 나누고, 경주 옥산서원은 통마리 그대로 올린다] 일반인들 중에는 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이도 있다. 피비린내 나는 희생이 생물 상태 그대로 제상에 올려진 모습이 이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그렇다면 서원 향사에서는 무슨 이유로 보기에도 그렇고 음복하기에도 불편한 생물 상태의 희생을 사용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예기󰡕라는 유교경전의 설명을 풀어 정리하면 이렇다.

신에게 올리는 제수 유형은 ‘혈성섬숙’, 네 가지가 있다. 이는 신의 종류에 따라 각기 희생을 어떤 방식으로 장만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신은 사람처럼 수저를 사용해 희생의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희생의 살아 있는 기운을 흠향한다. 그래서 제수는 살아 있는 기운, 즉 생기가 강한 것일수록 격이 높은 신에게 올린다. 생기가 가장 강한 것이 혈(血), 희생의 피다. 그래서 피는 신 중에서도 격이 가장 높은 천신에게만 사용한다. 다음은 성(腥)인데 피비린내가 나는 생고기를 말한다. 성은 주로 자연신에게 사용되며, 사람신의 경우는 성인·군자의 반열에까지 올라갔다고 판단되는 사람신에게만 사용한다. 향교·서원·불천위대제 등에서 생고기를 쓰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은 섬(爓)과 숙(熟)인데 섬은 살짝 데친 것, 숙은 푹 익힌 것이다. 이는 각각 세 번 술잔을 올리는 제사와 한 번 술잔을 올리는 일반제사에 사용한다.

5) 에필로그
지금도 도동서원 해설사 부스 밖 은행나무 주변에는 은행나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날씨가 사진찍기에 참 좋다. 요 며칠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어제 내린 비와 바람으로 오늘은 공기도 깨끗하고 하늘도 푸르다. 드문드문 하늘에 떠 있는 가을구름은 은행나무 단풍 사진 배경으로 그만이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현재 은행나무 뒤편으로 수월루 지붕공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월루 전체에 비개를 설치한 탓에 은행나무 사진촬영에 좀 방해가 된다. 수월루 공사는 올해 12월까지 예정되어 있다.

송은석(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