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90. 도동서원 ‘상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1) 프롤로그
요즘 달성 도동서원이 난리다. 지난 10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초·중등학생 인성체험프로그램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날은 달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선비문화체험’ 프로그램, 달성군 교육지원청에서 실시하는 ‘달성문화탐방’에다 일반 단체 탐방객까지 겹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도동서원 중정당 뜰에만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며칠 전이었다. 경기도에서 온 단체 답사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하던 중 ‘상지’를 두고 잠시 논란이 있었다. 상지(上紙)는 도동서원 강당인 중정당 전면 여섯 기둥 상부를 감싼 흰색 한지를 말한다. 예전부터 종종 상지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가급적 상지에 대한 해설은 간단히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답사객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응대하며 해설을 한다.

2) ‘동방오현 중 수현을 모신 서원’이란 표식
현존하는 우리나라 600여개의 서원 중 강당 기둥 상부에 상지가 있는 곳은 도동서원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보니 도동서원 상지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예전부터 있어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도동서원 상지는 ‘동방오현 중 수현을 모신 서원이라는 표식’이라는 것이다. 수현이란 ‘머리 首’, ‘어질 賢’, 현인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로 ‘동방오현 중 수현’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참고로 동방오현은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을 가리킨다.
도동서원에서 상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상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질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종종 ‘동방오현 중 수현을 모신 서원 표식’이라는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있다.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한훤당 선생이 왜 동방오현의 수현이냐?” 며 따지기도 한다. 상황이 그쯤 되면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좀 더 덧붙일 수밖에 없다.

3) ‘정답찾기’ 보다는 ‘사례소개’
전통문화를 공부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전통문화는 서양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논리적으로 똑 부러지게 설명되지 않거나, 정확한 근거나 정답을 찾기 어려운 예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뒤이어 이런저런 다른 주장이 나오면서 상황이 더 꼬이는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정답찾기’ 보다는 ‘사례소개’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절을 할 때 두 손을 겹치느냐 떼느냐는 문제를 두고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말자는 것. 기호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이러이러한 이유’로 양손을 겹쳐 절을 했고, 영남사람들은 영남사람대로 ‘이유’가 있어 양손을 떼고 절을 했다. 이렇듯 다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괜히 정답을 찾는답시고 절하는 방법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우는 범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설픈 주장은 시끄럽기만 하고 아니 한 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름에 대한 근거’만 제시할 수 있다면 일단 사례로 인정하자는 주의다. 이 점에서는 도동서원 상지도 마찬가지다.

도동서원 중정당 상지
현풍곽씨 종택 내 추보당 상지


4) 상지(上紙)의 사촌, 백분칠(白粉漆)
‘도동서원 상지는 동방오현 중 수현을 모신 서원 표식’이라는 주장은 도동서원에서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고, 수 백 년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구전된 이야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달성군에서 도동서원 외에도 상지를 볼 수 있는 곳이 더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도동서원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현풍곽씨 소례마을이 있다. 이 마을 현풍곽씨 종택 내에 재실이자 제청인 추보당[포산고가]이 있다. 바로 이 추보당 전면 여섯 기둥에 상지가 있다. 그런데 이곳 상지는 도동서원 상지와는 의미가 다르다. 소례마을 현풍곽씨는 청백리공파인데 조선 세조 때 청백리에 오른 곽안방 선생을 파조로 한다. 이런 연유로 청백리공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추보당 기둥에 청백리를 상징하는 백색 상지를 둘렀다는 것. 또 다른 곳은 하빈면 파회마을에 있는 삼가헌이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삼가헌 전면 기둥 5개에도 상지가 있었다. 필자는 옛 삼가헌 사진 속에서 상지를 본 적이 있다.[삼가헌 주인 박도덕 선생 역시 예전에는 기둥에 상지를 둘렀다고 증언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삼가헌의 경우 상지를 왜 둘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상지과 비슷한 것으로 ‘백분칠’이 있다. 기둥 아래쪽에 흰색 분칠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백분칠을 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 왕릉이다. 홍살문을 지나 능으로 가다보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정자각(丁字閣)을 만나게 된다. 이 정자각 기둥 아래쪽을 보면 하나같이 백분칠이 되어 있다. 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강릉향교 대성전 기둥에도 백분칠이 있다. 백분칠이 상지와 다른 점은 종이가 아닌 칠이라는 점, 상지와는 달리 기둥 아래쪽에 칠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둥 아래에 칠해진 백분칠은 또 무슨 의미를 담은 것일까?
언젠가 도동서원에서 해설사 근무를 하던 중 문화재 탱화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팀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상지와 백분칠에 대해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 역시 정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이라고 했다.

상지와 백분칠의 차이는 양택과 음택에 있는 것 같다. 왕릉은 신의 세계인 음택이기 때문에 음을 상징하는 아래에, 도동서원 강당은 산 사람들의 세계인 양택이기 때문에 양을 상징하는 위쪽에 상지가 있는 것이다. 또 탱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백분칠은 구름을 상징하는 것 같다. 구름[백분칠] 위는 신의 세계[정자각], 구름[상지] 아래는 사람의 세계[도동서원]라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5) 에필로그
현재 도동서원 앞으로는 낙동강을 따라 차도가 나있다.[2019년에는 도동터널까지 개통됐다] 그 옛날 조선시대 때 만에도 이곳은 오지였다. 하지만 도동서원 앞으로는 남한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강이 흘렀다. 당시 부산에서 안동에 이르는 낙동강 수로에는 많은 배가 오갔다. 도동서원에는 서원 앞을 오간 배와 상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그 옛날 배가 도동서원 앞을 지나갈 때면 뱃사람들은 도동서원을 향해 예를 표했다고 한다. 낮에는 햇빛에 반사된 상지를 보고, 밤에는 뱃전에 켜둔 횃불에 반사된 상지를 보고 도동서원임을 알았다고 한다. 한번은 해설현장에서 답사객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도 있다.
“예전에 어른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뱃사람들이 도동서원 앞에 이르러 상지가 보이면 돛을 잠시 내렸다가 상지가 보이지 않을 때쯤 돛을 다시 올렸다고 하더군요”
도동서원 중정당 여섯 개 기둥에 붙은 상지는 도동서원의 심벌이자 하마비요, 말없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섯 개의 눈이다. 오늘도 도동서원 중정당 뜰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