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87. 홍살문[홍전문]을 아시나요?

1) 프롤로그
지난주에 한글날이 있었다. 575돌을 맞는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었다. 500여 년 후 세상이 최첨단정보통신사회가 될 것이란 걸 미리 알았던 모양이다. 세계에서 인터넷 채팅 속도로는 한글을 따라올 언어가 없다고 한다. 한글로 5초 걸리는 문장이 중국어·일본어로는 35초 정도 걸린다고 하니 말이다.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도 단어도 조금씩 바뀐다. 언어가 사회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일상에서 흔히 쓰던 말인데도 현대인들에겐 낯선 용어들이 많다. ‘홍살문’도 그 중 하나다.

2) 권위와 신성한 공간을 상징
홍살문[紅살門]은 재밌는 단어다. 한 단어 안에 한자와 우리말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붉을 홍’, ‘문 문’에 가운데 글자는 화살을 뜻하는 우리말 ‘살’이다. 홍살문을 한자로 표기할 때는 ‘화살 전’자를 써서 ‘홍전문(紅箭門)’이라 한다.[참고로 아래 한글 프로그램에서 홍살문을 한자로 변환하면 홍전문으로 변환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홍문·정문·정려·오두문(烏頭門)·오두적각(烏頭赤脚)·작설(綽楔)·도설(棹楔) 등도 있다. 여하튼 홍살문은 ‘붉은 색[紅] 화살[箭]이 꽂힌 문[門]’이라는 뜻이다.
홍살문은 고대 중국에서 왕이 행차 도중 휴식·식사·빈객 접대 등을 해야 할 때, 임시로 장막을 둘러 궁궐을 조성하고 기(旗)를 세워 문을 표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홍살문은 기본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표식이다. 이렇게 시작된 홍살문은 나중에 공자·맹자 같은 성인이나 신(神)이 거처하는 공간으로까지 확대됐다. 왕의 권위에다 신성이 더해진 것이다.
홍살문은 한·중·일 3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물이다. 기능은 권위·신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동일하지만 명칭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일본에서는 ‘도리’라고 하는데 전체적인 모양은 우리 홍살문과 비슷하다. 다만 우리처럼 상부에 홍살이 꽂힌 형태가 아닌 그냥 민민한 민자 형태다. 중국 패루·패방 역시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크고 건축적인 요소가 많이 적용됐다는 차이가 있다.

3) 홍살문 형태
홍살문은 모양이 대체로 비슷하다. 대략적인 모습을 보면 좌우 양쪽에 한 개씩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그 상부에 가로로 두 개의 횡목(橫木)이 끼워져 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횡목 사이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십 여 개의 (화)살대가 끼워져 있으며, 구조물 전체에 붉은 칠이 되어 있다.
홍살문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있어야 할 문짝이나 기둥 바깥으로 연결된 벽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두 개의 기둥만 서 있고 가운데와 좌우가 텅 비어 있다. 이는 홍살문이 출입을 목적으로 하는 문이 아닌 다른 용도의 문이기 때문이다. 홍살문은 문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서로 다른 공간임을 알려주는 구조물이다. 쉬운 예로 사찰의 일주문을 들 수 있다. 일주문도 일종의 홍살문이다. 모양과 기능이 홍살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일주문이 세속과 부처님의 세계를 경계 짓는 표식인 것처럼 홍살문 역시 권위와 신성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홍살문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둥·횡목·살대만 갖춘 허문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문짝이 달린 정상적인 대문 형태에다 상부에 홍살을 꽂은 형태다. 전자를 ‘홍살문’, 후자를 ‘홍살널문’이라 한다.

하빈면 묘골 육신사 홍살문
현풍읍 상리 달성 사직단 홍살문


4) 육신사 홍살문, 달성 사직단 홍살문
우리 고장에도 홍살문이 있을까? 물론이다. 우리 고장에도 여러 개의 홍살문이 있다. 이중 오리지널 홍살문을 볼 수 있는 곳은 두 곳이다. 하빈면 묘골 육신사 경내와 현풍읍 상리 달성 사직단이다.
육신사 홍살문은 육신사 출입문인 외삼문을 들어가면 바로 앞 약간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이 홍살문은 전형적인 홍살문 형태를 하고 있다. 다만 ‘콘크리트’ 홍살문이라는 점이 옥에 티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나라에는 수백 년 넘은 홍살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홍살문의 주재료는 나무다. 그렇다보니 상부에 비바람을 막는 지붕을 얹지 않는 한 세월이 흐르면 상하고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콘크리트 홍살문이지만 옛 모습 그대로 세워진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한편 달성 사직단에서는 한 자리에서 네 개의 홍살문을 볼 수 있다. 사직단 홍살문은 육신사 홍살문과는 형태가 좀 다르다. 가운데 문짝이 없는 것은 동일하지만 기둥 좌우로 담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직단은 땅 신과 곡식 신을 모시고 사직제를 올리는 제단이다. 신을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기에 사직단 주변으로는 별도로 담장을 설치하고 동서남북 네 방위에 홍살문을 설치했다. 그런데 담장이 너무 낮다.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마음만 먹으면 바로 넘어갈 수 있는 높이다. 이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쌓은 담이 아니라 홍살문처럼 성과 속을 경계 짓는 상징적인 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담장을 특별히 ‘유(壝)’라고 한다.
이외에도 홍살문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고장에 산재한 정려각이나 비각 등에서다. 정려각이나 비각은 정면 또는 사방 벽이 흙벽이 아닌 홍살이 꽂힌 홍살벽으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홍살문의 변형이다. 또 달성 충혼탑 입구에 서 있는 충의문 역시 옛 홍살문에 기초한 현대식 홍살문이라 할 수 있다.

5) 에필로그
현장에서 홍살문을 해설하다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홍살 개수에 어떤 원칙이 있느냐는 것. 사실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없다. 다만 몇 가지 설이 있긴 하다. 이동범의 석사논문[한양대학교]을 참고하면 대략 이렇다.

○ 홍살의 형태는 전체 살대의 높이가 수평으로 평평한 ‘평형[一]’과 가운데가 상대적으로 높은 ‘산형[山]’이 있다. 왕릉의 홍살문은 산형, 서원·향교의 홍살문은 평형이 많다.
○ 홍살의 개수는 대체로 9~11개 사이인데 특별히 고정적이지는 않다. 왕릉의 경우도 홍릉과 유릉만이 13개이며, 나머지 왕릉은 모두 9~11개다. 홍릉과 유릉은 각각 고종과 순종 황제 능으로 아마도 황제라는 신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영월 장릉은 예외적으로 17개다]
○ 홍살 상부 태극문양에도 차이가 있다. 왕릉은 영월 단종릉인 장릉만이 이태극이고, 나머지는 모두 삼태극이다. 서원·향교는 모두 이태극이다. 이는 묘에는 삼태극, 유교건축물에는 이태극이라는 주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결과다. 삼태극은 천·지·인으로 사람이 관여함을 상징하고, 이태극은 사람이 관여치 않는 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인귀(人鬼)와 관련된 시설에는 삼태극, 유교나 천신·지신 같은 자연신과 관계된 시설에는 이태극이 사용되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