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86. 하빈면 구봉산 바위절벽 ‘탁대’

1) 프롤로그
대구 도심에서 달구벌대로를 이용해 서쪽으로 끝까지 가면 낙동강과 성주대교를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성주 땅이요, 건너지 않으면 대구 땅이다. 낙동강과 맞닿은 이곳은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다. 성주대교를 건너지 말고 우측 낙동강변 산자락을 바라보면 한 담장 안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고가 몇 채 보인다.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 보물 제2053호로 지정된 ‘달성 하목정’이다. 하목정 뒤편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끼고 나지막한 산줄기가 이어진다. 하빈면 하산리, 묘리, 기곡리까지 이어진 구봉산이다. 이번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구봉산 ‘탁대’에 대한 이야기다.

하빈면 최고의 절경 구봉산 탁대
구봉산 남쪽 끝자락. 우측에 성주대교가 보인다


2) 구봉산 탁대
구봉산은 하빈면 하산리·묘리·기곡리에 걸쳐 있다. 봉우리가 모두 아홉 개라 구봉산(九峯山)이란다. 구봉산은 남북으로 길쭉한 산인데 직선거리로 대략 7㎞ 쯤 된다. 정상을 기준으로 북동쪽은 기곡리, 남서쪽은 묘리, 낙동강 연안에 접한 최남단은 하산리에 속한다. 구봉산은 정상이 해발 191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으로 능선 대부분이 10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이다. 산 주능선에는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구봉산을 걸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강정보에서 육신사에 이르는 ‘달성강정보 녹색길’ 19㎞ 구간이다. 이 코스는 죽곡리·부곡리·문산리·봉촌리를 거쳐 달성 하목정·삼가헌·육신사에 이르는 코스로 지역의 역사문화관광지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코스다. 이 코스 중 ‘짧고 굵은’ 구간 하나를 든다면 묘골 육신사-용산-파회마을-구봉산-하목정을 둘러 볼 수 있는 ‘하산리·묘리’ 구간이다. 이 구간은 구봉산 능선을 걷는 내내 서쪽으로 낙동강을 가까이 끼고 있다. 동시에 해발 100m 내외의 낮은 능선길이라 힘들이지 않고도 산책과 역사문화관광지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어 아주 매력적인 산책길이다. 이 구간 중에 아는 사람만 안다는 하빈면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탁대’라는 바위절벽이 있다.
일명 형제바위·자매바위라고도 불리는 탁대는 낙동강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높이 약 150m, 좌우 길이 약 200m가 넘는 바위절벽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탁대는 강에서 구봉산 능선 쪽으로 산이 ‘⊃’ 형태로 깊게 파여 있다. 마치 칼로 무 자르듯 산 한쪽이 잘려나간 모습이다. 낙동강 쪽에서 바라보이는 탁대는 거대한 바위절벽으로 나무가 무성한 주변부와는 달리 완전히 암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팔공산을 잘 보기 위해서는 팔공산이 아닌 대구 도심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탁대 역시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낙동강 건너 성주 쪽에서 봐야 한다. 탁대를 ‘자매바위’ 혹은 ‘형제바위’라 부르는 것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3) 탁대에서 몸을 던진 순천박씨 자매
얼마 전 ‘친정곳에 묻힌 미성부 박씨자매’란 글을 쓴 적 있다. 임진왜란 때 묘골 출신 순천박씨 자매가 왜적을 피해 달아나다 낙동강으로 몸을 던져 순절했다는 내용이다. 그 자매가 몸을 던진 곳이 바로 이곳 ‘탁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난 1592년 5월 18일. 왜적이 묘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때 박팽년 선생의 5세손인 총관공 박충후의 두 딸이 왜적을 피해 낙동강가 높은 바위벼랑인 탁대에서 강으로 몸을 던져 순절했다. 당시 언니는 인근 하산마을 전의이씨 이종택과 혼례를 올린 후 신행을 앞두고 친정에 머물던 중 변을 당했고, 동생은 아직 처녀의 몸이었다. 나중에 이 일이 세상에 알려져 언니인 박씨 부인에게는 조정으로부터 열부 정려가 내려졌다. 현재 하빈면 묘골마을 입구 순천박씨 선영 아래에 자매의 묘가 있다.

박씨 자매가 몸을 던진 구봉산 탁대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탁대를 자매바위 혹은 형제바위라 부르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박씨 자매의 순절에 유래한 것이다. 탁대가 지금처럼 두 조각 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에도 전설이 하나 전한다. 자매가 강으로 투신하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바위산이 두 조각났다는 전설이다. 벼락으로 인해 박씨 자매를 쫓던 왜군들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수장됐음은 당연한 일.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이 지역에 전양군 이익필이란 인물이 살았다. 그는 달성 하목정 창건주인 낙포 이종문의 현손[玄孫·4세손]이었다. 무과에 급제한 장수로 영조 때 무신란을 평정한 공으로 양무공신에 오르고 전양군에 봉군됐으며,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조로부터 양무陽武라는 시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만년에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 하목정으로 내려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즐겼다. 그는 하목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16곳을 선정해 ‘하목당16경’이란 시를 지었다. 칠언절구 16수로 이루어진 ‘하목당16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하목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잘 묘사한 수작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하목정 주변 경승 16경은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 시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 중 탁대를 읊은 시도 있다. 제12경 ‘형암조어(兄巖釣魚)’, 형제바위에서 고기 낚기다.

巖名兄弟至今存 이름하여 형제암 지금도 있으니
節義馨香萬古尊 절의 향기 만고에 높다네
寄語世間垂釣客 세상에 낚시 드리운 객에게 부탁하니
莫敎閑踏動雲根 공연히 (바위) 밟아 구름뿌리 움직이게 하지 말라

4) 하리묘박(霞李竗朴)
달성군 하빈면 일원에는 예로부터 ‘하리묘박’이란 말이 전한다. ‘하산 전의이씨, 묘골 순천박씨’란 말로 과거 하빈현을 대표하는 두 성씨란 뜻. 그런데 이때 말하는 하빈은 지금의 하빈과는 좀 다르다. 조선시대 하빈현은 지금의 달성군 하빈면·다사읍은 물론 대구시 달서구 성서, 고령군 다산면 일대까지를 아우르는 큰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산 전의이씨는 하목정이 있는 하산에서 출발한 문중이다. 전의이씨가 이 지역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70년 전인 임진란 이전이다. 당시 예산현감을 지낸 이필李佖 이란 인물이 선대 연고지인 지금의 경기도 부평을 떠나 이 지역으로 내려온 것이 시작이다. 이후 이필의 아들 참판공 이경두, 손자 낙포 이종문과 참봉 이종택 삼부자는 임란 때 의병활동으로 큰 공을 세웠다. 증손자 수월당 이지영·다포 이지화는 형제가 문과에 나란히 동방급제 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앞서 소개한 ‘하목당16경’의 저자 전양군 이익필에 이르러 그 명성이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묘골 순천박씨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560년 전 ‘사육신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육신 박팽년 선생의 손자 박일산[초명 박비]에 의해 시작된 문중이다. 세거지 묘골에는 유적으로 육신사, 태고정, 삼가헌 등이 있다.

5) 에필로그
‘대(臺)’는 높은 지대에 흙이나 돌 등을 쌓아 사방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단, 혹은 그러한 곳에 건립한 누정 형식의 건물을 말한다. 우리 지역에는 낙동강·금호강·진천천 세 물줄기를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화원읍 화원동산 ‘상화대’, 비슬산과 초곡천·구천을 조망할 수 있는 현풍읍 쌍계리 치마거랑 마을 ‘풍영대’가 대표적이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