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83. 효열부 전의이씨 이신옥, 절명사비(2)

지난주에 이어 글을 계속 이어가보자. 이번에는 효열부 전의이씨 이신옥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직접 지은 제문과 절명사를 만나보기로 하자. 그녀의 제문과 절명사는 글이 상당히 길다. 하지만 어깨너머 글을 익혔다는 양반가 규수의 글이자, 영조로부터 효열부로 정려까지 받은 여인의 글이니 어떤 글인지 한 번 보자. 두 글은 모두 한자, 한글이 섞여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270여 년 전 글이다 보니 문체와 맞춤법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전체 내용 중 일부만 발췌했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글도 최대한 현대식으로 바꿔보았다.

1) 오호통재라, 제문祭文
제문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나타낸 글로 정해진 형식은 없으며 글이 길다. 주로 제주가 아닌 친인척이나 지인이 제물을 올리고 제문을 읽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축문과는 다르다.

유세차 정묘년(1747) 9월 무자삭 26일 계축일. 한 집안의 주부[맏며느리]인 이씨[전의이씨]는 하늘·땅·사람 삼천 세계에 용납되지 못할 큰 죄를 지은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온몸이 쓰러질듯 합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형체와 그림자가 흩어진 넋을 모아, 힘써 담을 크게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돌아가신 부군 영전에 잠깐 고하나니 앎이 있을까요? 오호통재라. 저의 전생 죄악이 하늘과 신명의 저버림을 받아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 신세를 면치 못해,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로운 남매가 새로이 부모를 맞아 불쌍하고 사랑함이 지금 같을 때가 없었습니다…(중략)…지난해 음력 12월 그믐에 당신께서 기러기[전통혼례에서 신랑이 들고 가서 전안례에 사용하는 나무기러기]를 안고 저를 맞아주시니 나이는 동갑이요, 문중 또한 서로 격이 맞았으니 빈부귀천이 누가 높고 낮았을까요? 집안사람이 말하기를 진실로 원앙의 쌍이요,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니 백년을 함께 즐기리라 하셨는데 이 무슨 일 일까요? 오호통재라. 당신께서 생전에 제가 있는 곳에 두 번 오셔서 조용히 저에게 경계하며 이르셨습니다. “집에 죄를 얻지 말고 친척 대하기를 내 자식 내 형제처럼 하세요” …(중략)…오호통재라, 오호통재라. 문득 당신의 부음이 이르니 “하늘아! 하늘아! 어찌 차마 어이 이런 일을 하는가”. 한마디 소리도 하지 못하고 오장육부는 끊어지고 온몸은 사라져 유유히 뜬 넋은 어디 있는가요?…(중략)…절절통재라. 당신께서 이별하실 때 옷을 벗어 내게 주며 “내가 그리울 때 이 옷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에 탈이 없도록 하시오. 초가을에 좋은 날을 받아 그대를 데리러 오겠소” 라며 금석같이 한 언약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통재라. 죽고 사는 결정이 그날인 줄 제가 어찌 알았겠나요? 간장이 다 녹아내리고 형체와 그림자는 남았으나 마음과 뼈는 다 썩었답니다. …(중략)…통재라. 부부는 인륜의 대절이요 만복의 근원이라 했습니다. 주역 64괘에 건곤[부부]이 으뜸이요, 모시[시경] 3백편에 관저關雎를 먼저 쓰니 성인의 정한 법이 중한 줄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중략)…저의 청춘을 어디에 의탁하라고 원통히도 돌아가셨나요? 통재라. 통재라. 언제 다시 만나 이 집에서 화목하게 즐기실 건가요? 달 밝은 밤과 사람 없는 때를 틈타 하늘에 가만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 또한 당신과 함께 돌아가게 해달라고…(중략)…오호통재라. 언제 다시 보기를 기약할까요. 같이 죽자는 맹세를 저버리니 같은 곳에 묻히기를 원할 따름이에요. 오호라. 붓을 들어 한 번 크게 울고 넋이 유유히 노니 당신 가는 길을 보고자 하나 어찌 능히 미치리리오. 오호. 당신! 다시 원하노니 3생 연분을 다시는 잊지 말고 저를 빨리 데려 가세요. 저를 세상에 오래 두면 원통한 마음 하늘에 이를 것이니 당신의 체백인들 어찌 편하겠나요. 흐르는 눈물은 흔적이 또렷하고,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고통과 마음속에 품은 온갖 정이 가슴과 애간장을 막으니, 붓을 들어 쓰는 바를 알지 못하고 만분의 일도 못 베풀겠습니다. 어진 신령이시어! 앎이 있거든 한 잔 술을 흠향하시고 저의 원[어서 빨리 남편 곁으로 데려가 달라는 기원]을 다시금 잊지 말아 주세요. 오호통재라. 오호통재라. 상향

2) 이승에서의 마지막 글, 절명사絶命詞
사(詞)라고 하는 것은 산문과 운문 사이쯤 되는 문학 장르다. 산문처럼 글이 길지만 대체로 4·4음보를 기본으로 하는 음률이 있어 운문에 가깝다. 전의이씨 절명사는 모두 63구로 되어 있다. 내용 중에는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써 절개도 지켜야 하고, 동시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는 불효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열(烈)과 효(孝) 사이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슬프다. 가을바람은 어느 곳에서 오나요. 외로운 마음은 더욱 슬프고 슬프네요. 계절의 흐름은 이미 변하니 단풍은 비단 수놓은 장막처럼 둘렀고, 누운 수양버들은 어지러이 금실을 드리웠네요. 원앙은 서로 갈라져 꽃 수풀을 잃었고, 짝 기러기 남쪽으로 나니 또한 외롭지 아니할까요? 가을하늘 보름달은 서릿발에 잠겼으니 남편 잃은 나와 더불어 빛이 애처로워 보이네요. 슬프다. 계절 따라 변하는 경치여. 정말 나의 명을 재촉하는 때로다.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죽음이여. 어찌하여 지금인고. 부모가 살아 있으니 천륜을 막는구나. 여자는 부모를 멀리하고 형제와 이별하고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하거늘…(중략)…소녀의 작은 몸을 한탄할 바 아니지만 20년 흔적이 전할 것이 없어지니 조상은 누구에게 전하고 지켜줄 이 없는 시아버지는 무엇을 의지할고.…(중략)…내 마음과 내 기운이 옛 적에 또렷하고 낭군의 낭랑한 말소리와 화평한 얼굴이 의심이 없는지라. 낭군님이 다시 돌아오실까요? 아니면 내가 낭군님을 따를까요. 세상 이별을 못내 슬퍼하였더니 한 평생 다시 만날 줄 누가 알겠나요. 옛적 아황과 여영이 저 같으니 우리 두 사람의 맑은 이름과 곧은 절개를 가히 알지 않겠어요. 오직 기쁘고 반가운 넋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막혔으니 집 앞 산에서 우는 이는 시아버지요, 빈소에서 슬피 곡하는 이는 시어머니와 두 자매로다.

3) 에필로그
270년 전 전의이씨 효열행을 칭송했던 여러 문서는 소례 종가에서 소장해오다 6·25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다. 하지만 다행히 1947년 필사[베낀 글]해 둔 자료가 이후 발굴되어 ‘전의이씨 실행록’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실행록에는 당시 고을대표 김성원, 고을향약 대표 곽방구 등이 올린 공문서 외, 현풍 사림 101인[대표 엄이절], 거주민 49인[대표 박만필], 단성 사림 73인[대표 권대일], 창녕 사림(1) 22인[대표 윤상정], 초계 사림 78인[대표 노갑후], 대구 사림 52인[대표 정동필], 고령 사림 28인[대표 박홍통], 창녕 사림(2) 39인[대표 노홍], 성주 사림 37인[대표 윤면정] 등이 작성한 통문과 ‘절명사’, ‘제문’이 등재되어 있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

달성군 구지면 징리 곽내용, 이신옥 합장묘[사진, 곽정섭]

효열부 전의이씨 실행록에 등재된 유림통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