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78. 부용당·임하처사 두 선조를 기리는 부림정

1) 프롤로그

7·8월 무더위가 시작되면 비로소 빛을 발하는 꽃나무가 있다. 장마가 끝나고 태양 볕이 따가워지기 시작할 무렵 피기 시작해, 여름 석 달 동안 만개하는 배롱나무 꽃이다. 우리 고장에서 가장 멋진 배롱나무 꽃을 볼 수 있는 곳을 한 곳 꼽으라면 단연 달성 하목정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하빈지역 전의이씨 낙포 이종문 선생이 건립한 하목정은 지난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 보물 제2053호로 지정됐다. 하빈 전의이씨를 대표하는 1세대 문중 유산은 세 개가 있다. 하빈면 하산리의 하목정과 부곡리 부림정, 고령 상곡의 장육당이다. 이번에는 부곡리에 터를 잡은 전의이씨 문중 랜드마크 부림정(芙林亭)에 대한 이야기다.

2) 하리묘박(霞李竗朴)

달성군 하빈면 일원에서는 예로부터 ‘하리묘박’이란 말이 전한다. 하산 전의이씨, 묘골 순천박씨란 말로 하빈을 대표하는 두 성씨란 뜻이다. 하산은 현재 하목정이 있는 동네다. 자연부락명으로는 하산 또는 하목정이라 불린다. 전의이씨가 이 지역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70년 전인 임진란 이전으로 알려져 있다. 예산현감을 지낸 이필(李佖)이란 인물이 선대의 연고지인 지금의 경기도 부평을 떠나 이 지역으로 내려온 것이 시작이다. 낙남조(落南祖) 이필의 아들 참판공 이경두, 손자 낙포 이종문과 참봉 이종택 삼부자는 임란 때 의병활동으로 큰 공을 세웠고, 증손자 수월당 이지영·다포 이지화는 형제가 문과에 동방급제 해 벼슬에 나아갔으며, 6세손 전양군 이익필은 무신란 때 큰 공을 세워 ‘양무공신’에 오르고 ‘전양군’에 봉군됐으며,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양무’라는 시호를 받았다. 낙남조 이후 꾸준하게 지역사회에 이름을 알려가던 하빈 전의이씨. 낙남조 6세손 전양군 이익필에 이르러 비로소 하빈을 넘어 영남을 대표하는 사대부가 반열에 올랐다.

3) 가마실에서 새터로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하목정에서 시작된 하빈 전의이씨는 이후 하목정을 중심으로 낙동강 좌우로 번져나갔다. 이들은 하목정을 창건한 낙포 이종문 아들 대에서 크게 세 개 파로 갈라졌다. 장남은 하목정·동곡·기곡[수월당 문중], 2남은 강 건너 고령 상곡[다포공 문중], 3·4남은 하산리 남동쪽 부곡리[부림정 문중]에 세거하며 번성했다. 그런데 1·2남 문중에 비해 3·4남 문중은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종문의 첫 번째 부인인 옥산전씨는 장남 이지영, 2남 이지화를, 두 번째 부인인 전주이씨는 3남 이지발(李之蕟·1614~1664), 4남 이지시(李之蒔·1617~1691)를 두었다. 이지발은 자가 윤실(閏實),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다. 모당 손처눌 문하에서 수학해 문학으로 향리에 알려졌으며. 품작은 종6품 선교랑이다. 이지시는 자가 영실(永實), 호는 임하처사(林下處士) 혹은 임하헌(林下軒)이다. 형 이지발과 함께 모당 선생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냈다. 솔직히 출세란 측면에서 보면 문과에 동방급제 해 벼슬에 나간 1·2남에 비해 3·4남이 조금 모자람은 있어 보인다.
3·4남 형제가 터를 잡은 곳은 부곡리 가마실로 지금의 문양역 동편 마을이다. 우리나라 자연부락 명칭 중에는 ‘가마실·가무실’이란 지명이 유독 많다. 가마실이란 지명은 ‘지형이 마치 가마굴처럼 생겼다’, ‘주변에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가마실에서 오랜 세월 세거해온 후손들은 이후 가마실 북쪽 마을인 지금의 새터로 세거지를 옮겼다. 현재 새터에 있는 부곡리 전의이씨 재실 부림정은 본래 가마실에 있었다. 하지만 화재로 소실, 일제강점기 말인 1937년 자리를 옮겨 새로 건립한 것이 지금의 부림정이다.

문중원들이 직접 쌓은 부림정 흙돌담
전의이씨 부림정 문중 재실 부림정

4) 문중원 손때가 남은 흙돌담

부림정은 부용당 이지발·임하처사 이지시 두 형제분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실 겸 정자다. 정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서 마주보았을 때 좌에서부터 2칸 방, 2칸 대청, 1칸 방이며, 전면 5칸 모두 유리창호를 설치했다. 대청에는 부용당·임하헌 편액을 비롯해 부용당중건기·부용당중건상량문·선당중건근지소감·임하헌기·기타 시판 등이 걸려 있다. 서쪽 방에는 대형 ‘전의이씨 예산공후 부림정문중 세계도’가 있다. 이는 전의이씨 예산공파 재실의 특징으로, 모든 재실에 빠짐없이 해당 문중 대형 세계도가 걸려 있다.
부림정은 이지발의 호인 부용당과 이지시의 호인 임하처사에서 첫 글자 한 자씩을 따온 것이다. 부림정은 일반 여느 재실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1937년 현 건물을 지을 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목수도 문중사람이요, 일군도 문중원이었다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 잘 남아 있는 흙돌담을 쌓을 때는 문중원이 총동원됐다고 한다. 이른바 문중원 부역(?)으로 완성된 흙돌담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황토와 돌을 한 층씩 번갈아가며 쌓아올린 흙돌담에서는 세련미 보다는 묘한 투박미가 느껴진다. 1996년 기와를 전면 교체했고, 2010년 목재에 방충도색처리를 했다.

5) 에필로그

우리 속담에 “등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잘 난 자식은 출세를 위해 집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한 번 서울 맛을 보면 서울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못난(?) 자식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지키고 산다. 고향에 남았다는 이유로 부모도 봉양해야하고, 제사나 벌초 등도 빠질 수가 없다. 그래서 “등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키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부용당 이지발과 임하처사 이지시 형제. 이들의 호를 보면 이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지향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부용은 연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가에서 말하는 연꽃은 불가에서 말하는 연꽃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유가 연꽃의 의미는 염계 주돈이의 ‘애련설’에 잘 나타나 있다. 연꽃은 곧 군자이니, 군자란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고, 때를 만나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 자기공부를 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임하란 말도 마찬가지다. 시골에 은거하며 때를 기다리는 선비를 말한다.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염계 주돈이 ‘애련설’ 중에서]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