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옥포읍 교항리 마을 숲, 이팝나무 군락지

1) 프롤로그
올해는 예년에 비해 봄꽃이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 필자가 근무하는 도동서원 모란 개화도 예년에 비해 10여 일이나 빨랐다. 이런 해엔 사진동호인들이 애를 먹는다. 하루, 이틀만 방심해도 때를 놓치기 쉬운 게 꽃 사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대구문화관광해설사로서 계절별 꽃으로 이름난 우리 지역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을 즐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올해는 필자 역시 사진동호인처럼 빠른 개화 덕에 여러 번 낭패를 봤다. 지난 5월 6일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기대와는 달리 꽃이 거의 다 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위로도 할 겸 이번에는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에 대해 알아보자.

2) 희귀생물 자생지 보호림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는 1991년부터 달성군에서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보호 유형은 ‘희귀생물 자생지’인데, 대구 경북지역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 이팝나무 군락지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현재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는 면적이 1만 5,510㎡로 수령 약 100-300년 된 이팝나무 노거수 30여 그루와 굴참나무·팽나무 등 5종의 노거수 40여 그루를 중심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2000년 초부터는 출향인사 중심으로 ‘이팝나무 한그루 심기’ 운동을 전개하고, 동시에 달성군의 지원으로 이팝나무 군락지와 교항리 일대에 이팝나무 묘목을 더 심어 민관이 함께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2013년에는 안전행정부가 주관한 ‘우리 마을 향토자원 베스트 30선’에 선정됐고, 현재는 달성군을 넘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 숲’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팝나무 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3) 쌀밥나무·이밥나무·입하나무
‘이팝나무’. 나무 이름이 좀 독특하다. 영어 같기도 하고 한자 같기도 하다. 이팝나무란 이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래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쌀밥[이밥]나무’ 혹은 ‘입하나무’에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쌀밥나무 유래설은 이팝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마치 나무에 새하얀 쌀밥을 흩뿌려 놓은 듯해서 쌀밥나무 혹은 이밥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다. 입하나무 유래설은 이팝나무 꽃이 매년 5월 초, 입하 절기를 전후해 만발한다 해서 입하나무로 부른 것이 나중에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다. 쌀밥나무·이밥나무 유래설과 관련 있는 대표 전설 두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 가난한 나무꾼이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하루는 오랫동안 곡기를 끊은 어머니가 흰 쌀밥을 먹고 싶어 했다. 나무꾼은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집안에 남은 쌀이라고는 딱 밥 한 공기 분량밖에 없어서, 만약 어머니 상에만 쌀밥이 올라가면 분명 어머니가 걱정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무꾼은 꾀를 냈다. 때마침 입하 절기에 맞춰 집 마당에 서 있는 나무에 하얀 꽃이 만발했다. 나무꾼은 그 꽃을 따 자신의 밥공기에 담아 쌀밥인 체하고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맛있게 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임금은 나무꾼에게 상을 내렸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나무꾼이 꽃을 따서 먹은 나무를 쌀밥[이밥]나무라 했다.

○ 호되게 시집살이를 하던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제사를 앞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쌀을 주면서 제삿밥을 지으라고 했다. 하지만 워낙 가난한 집에서 컸던 며느리는 쌀밥을 먹어 본적도 지어 본적도 없었다. 밥물을 제대로 맞췄는지 불안했던 며느리는 밥을 뜸들일 때 밥알 몇 알을 집어 맛보았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그날부터 며느리가 조상에게 올릴 제삿밥을 먼저 맛보았다며 더욱 심하게 구박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결국 뒷산에 올라 목을 매 죽었다. 다음해 봄,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 한 나무에 하얀 밥알을 흩뿌린 듯한 꽃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쌀밥 때문에 죽은 며느리의 한이 맺혀 핀 꽃이라며 이 나무를 쌀밥[이밥]나무라 불렀다.

교황리 마을 숲 입구 정자나무와 교간정


4) 교항리 랜드마크 이팝나무 마을 숲
우리나라 대부분 전통마을에는 마을 숲이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마을일수록 더욱 그렇다. 마을 숲은 대체로 마을 초입에 있는 예가 많다. 이를 두고 민속·지리·산림·조경 등 여러 분야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연구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 내용이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내놓은 연구결과가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풍수지리의 주장과도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천여 년 전 만들어진 풍수지리 이론이 현대 학문의 과학적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교항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성산이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이팝나무 숲도 마을 개척 당시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주변에 큰 산 없이 들판으로만 이뤄진 교항리는 겨울철이면 북서쪽 낙동강으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지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북서쪽에 인위적으로 방파제 모양의 ‘一’자형 언덕을 쌓고 이팝나무를 심어 마을 숲을 조성했다. 이른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좋은 기운은 보존하고, 나쁜 기운은 막는 ‘비보숲’을 만든 것이다. 2006년 출향민들이 십시일반 출연해 설치한 이팝나무 숲 입구 팔각정자의 이름을 ‘교간정(橋干亭)’이라 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교간정은 ‘교항리 방패막이 정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항리 이팝나무 숲은 마을에서 워낙 중요한 공간이다 보니 예로부터 숲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있었다. 숲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벌금으로 쌀 한 말씩을 물리기도 했고, 아무리 땔감이 부족해도 이 마을 숲의 나무는 절대 베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수백 년 간 지켜온 마을 숲은 마을 여인들에게는 봄철 꽃놀이 장소로, 남자들에게는 휴식과 풍류공간으로, 아이들에게는 단골 소풍장소로 애용 됐으며,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 제당 등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매년 5월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일요일이 되면 교항리 주민들은 이팝나무 숲에서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5) 에필로그
교항리는 다른 말로 ‘다리목’으로도 불린다. 400년 전 처음 이 마을이 생길 때 이곳에 큰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목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할 때 ‘다리 교(橋)’, ‘목 항(項)’ 교항리가 된 것이다.
교항리에는 예로부터 이런 말이 전해온다고 한다. “이팝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면 그 집 사람이 죽거나 아니면 그 집 소가 죽는다. 하지만 마을 공동 용도로 사용하면 괜찮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생각이 참 고졸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생쌀 자꾸 묵으믄 너거 어무이 빨리 죽는데이” 하던 무서웠던(?) 그 시절이 그립다.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