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고 답하다] 흔치 않은 인연

아마 이런 인연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전방에서 고생하시는 국군과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파월장병에게 각급 학교에서는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내곤 하였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때 위문편지를 쓴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파월장병 아저씨로부터 답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아저씨’와 서로 연락을 하고 만나고 있으니, 가히 흔치 않은 인연이라 할 만하다.
아저씨의 말씀에 의하면, 월남 파병 당시 고국(한국)에서 보내준 수없이 많은 위문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위문편지가 많이 오기 때문에 그 중에서 실제 읽어보는 것은 최소한 여중생 이상의 여학생 편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학생, 그것도 초등학생의 편지를 어떠한 연유로 읽었으며, 답장까지 했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그 말씀이 재미있었다. 휴지로 쓰려고 인기 없는(?) 초등학생 글씨의 위문편지 하나를 무심코 집어 들고 화장실에 갔다고 한다. 휴지로 사용하기 전에 한번 읽어보았는데, 초등학생치고는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답장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때부터 초등학생과 파월 장병 아저씨 간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후, 아저씨는 파병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전역하기 전까지 서울 근교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하였다. 그때 나는 그 부대에 면회를 가서 아저씨와 첫 상봉을 하였는데, 그 때의 설렘과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저씨는 전역 후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중학생이 된 나는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당시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동생과 함께 부산에 간 적도 있다. 그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서로 오가며 아저씨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저씨께서는 초등학생 어린애였던 필자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 당신 일처럼 대견해 하며 기뻐하셨다. 특히 필자가 장군이 되었을 때에는 크게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금일봉까지 두둑히 주셨다.
요즘도 필자는 아저씨와 가끔 카톡을 주고받는다. 어느 연인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겠는가? 나의 자랑스런 아저씨, 그 이름도 장한 부산의 이혜중 아저씨.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파이팅이지 말입니다!
구용회 건양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