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_木曜斷想] 아버지라는 이름

6,70년대 우리 아버지들의 밥상은 다른 식구들과 따로 차려졌다. 그때 아버지 밥상에는 다른 식구들의 밥상에는 없는 반찬들이 몇 가지 더 놓여있기도 했다. 이런 대우는 모든 식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며 아버지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는 일종의 경외감이 생겨났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모자라도,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해도 아버지는 존재만으로 존중받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 자체가 법이고 진리였다. 집안의 질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특별하고 경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친구 같고 편안한 존재가 되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이전의 절대적 권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아가 많은 가정에서 이미 아버지 보다 아이들이 우선 되고 있다. 특별한 음식이 있어도 “이건 아버지가 먼저 드시고”가 아니라 “공부하느라 힘든 아이가 먼저 먹어야”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아버지도, 아이들도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었던 이전과 지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어머니의 역할이나 위상도 달라졌고 아이들의 가치도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적인 역할이나 가사의 분담 등 사회 환경과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가정의 경제권을 어머니가 행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권위는 점점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처럼 지나치게 경직될 필요는 없다. 아버지를 무조건 경외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편안하게’ 대하는 것과 ‘만만하게’ 대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편안함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만함으로 변하기 쉽다. 편암함의 바탕에는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하며, 아버지가 만만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족 모두가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
아버지는 수퍼맨도 아니고 신은 더욱 아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가끔은 어설픈 행동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하고 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선택일 수 있지만 아버지의 역할과 위상을 ‘존중’하는 것은 필수이다.

변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