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144. 무덤에서 나온 400년 전 편지 172매, 현풍곽씨 언간(2)

1) 프롤로그
지난번에 이어 ‘현풍곽씨 언간’에 대해 계속 알아보기로 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 172매 중 곽주가 부인 진주 하씨에게 보낸 편지가 96매, 부인이 곽주에게 보낸 것이 6매, 출가한 딸들이 어머니께 쓴 것이 42매, 기타 출가한 딸들이 시누이에게, 아들이 어머니에게, 안사돈 간에 주고받은 편지 등이다. 400년 전 편지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몇 장의 편지를 한 번 살펴보자.

2) 3년만 한 집에서 참아보소

○ 이창이가 서러워한다고 해서 제각기 집에서 내보낼 수가 있겠는가. 자네에게 너무 많이 서럽게 하지 아니하면 3년은 한 집에서 살고, 3년 후에 제각기 나가게 하고자 하니 자네가 짐작하여 기별하소. 친어버이와 친자식 사이에도 편치 않은 일이 있거늘, 하물며 의붓어버이와 한 집에 살며 어찌 일마다 좋게야 생각할꼬…
○ 요사이 무슨 일로 집안이 조용한 때가 없는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네의 마른 성질에 어찌 견디는고. 자네가 “같이 살기 편치 않다”고 말하면 다음 달로 제각기 들어갈 집을 짓고 제각각 살기로 하세. 멀찍이 집을 지어 나가든지, 같이 살 것 같으면 문을 제각기 내고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자네가 짐작하여 기별하소.

이는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로 곽주의 후처 하씨와 전처 소생인 장남 곽이창이 서로 불화했음을 알 수 있는 편지다. 반면 둘 사이의 관계가 정말 그랬을까 의심이 가게 만드는 편지도 있다. 다음은 곽이창이 하씨에게 보낸 편지다. 분가 이후 어느 때인가부터 다시 사이가 좋아진 것일까?

밤사이 기후 어떠하옵신고. 사모 망극하옵니다. 자식은 무사히 왔습니다. 초계 동생의 살풀이 날은 이 달 스무아흐렛날도 극히 좋고 3월 초하룻날도 좋다하니 두 날 중에서 가리어 하옵소서. 아무쪼록 기후 평안하옵심을 밤낮으로 비옵니다. 이월 스무엿샛날, 아들 이창 사룀.

3) 큰마마·작은마마
‘현풍곽씨 언간’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각종 질병에 대한 이야기다. 천연두·홍역 같은 돌림병, 고뿔 같은 시절에 따라 발생하는 시기병, 종기, 심[학질], 가슴앓이[폐병] 등이다.

○ 역신은 어떠하오며 시기병은 없사옵니까. 이곳은 사방에 깔린 것이 역질과 시기병이오니 무사히 벗어나기 어려울 듯합니다. [출가한 딸이 하씨에게]
○ 듣자오니 대임이가 수리비 역신을 한다고 하니 놀라움이 말할 수 없습니다. 아주버님 편지에 두 아기가 다 좋아졌다고 하니 하도 기뻐서 하늘에도 오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누구는 얼굴이 얽었고 아니 얽었는지 자세히 편지해 주십시오. [출가한 딸이 하씨에게]
○ 아버님이 편지에서 “뎡냥이의 머리에 난 종기 약을 하여 주었는데, 뎡냥이가 거슬러 못 바른다”하여 놔두었다하니, 거스르나마나 부디 약을 발라서 빨리 낫게 하소. 여기에 와 있어도 그 아이를 한 때도 잊지 못한다네. 부디 빨리 아물게 하소. [곽주가 하씨에게]
○ [대임이의 학질에]소주를 먹이면 좋다하니 알맞은 소용에 꿀을 반 종지만큼 먼저 넣고 꿀 위에 소주를 가득 넣은 후 김이 나지 않도록 단단히 싸서 봉하여 보내소. [곽주가 하씨에게]

4) 임란 후 혼란스런 사회상
임란 직후 조선은 오랫동안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곽주가 살던 현풍 일원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곽주는 여러 통의 편지를 통해 부인에게 신변단속을 당부하고 있다.

졍녜·졍녈이 절대로 밖에 나가 사내아이들하고 한 데서 못 놀게 하소.…당직도 금츈이를 자기 집으로 보내지 말고 늘 집에서 자게 하소. 내가 있으면 무던하지만 내가 없을 때는 절대로 혼자 자지 마소. 조심조심하여 계시오. 앞 사립문은 늘 닫아 매어두고…뒷간도 움 뒤에 만들어서 보고 절대로 밖의 뒷간에 나와 보지 마소.

5)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십시오
곽주가 살던 17세기 초, 한글이 조선 사회에 뿌리를 내렸던 모양이다. ‘현풍곽씨 언간’을 통해 당시 사대부가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한글을 교육하는 풍조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곽주가 처가에 가 있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십사 장모에게 부탁하는 편지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다. 언문은 한글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 …아우의 자식도 둘이 거기에 가 있을 때 언문을 가르쳐 보내시옵소서. 수고로우시겠으나 언문을 가르치옵소서. 말씀 드리기 송구스러워하다가 아뢰옵니다. [곽주가 장모에게]
○ …작은 아기는 언문을 쾌히 배워서 내게 유무를 빨리 하라 하소.…가운데 아기 언문을 쾌히 배웠다가 내게 보이라 하소. 셋째 아기도 이제는 쾌히 온전하여 있을 것이니 언문을 외워 있다가 보이라 이르소. 모쪼록 아이들 데리고 편히 있으소. [곽주가 하씨에게]

6) 딸을 또 낳아도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재취로 들어온 하씨 부인은 아들보다 딸을 먼저 낳았던 모양이다. 곽주는 또 다시 출산을 앞둔 부인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낸다. 산기가 돌면 기별을 하라고, 약을 준비해서 보냈다고, 딸이라도 괜찮으니 몸조리 잘하라고.

…이 달이 다 저물어 가되 지금 아기를 낳지 아니하니 정녕 달을 그릇 헤아렸는가 하네.…종이에 싼 약은 내가 가서 달여 쓸 것이니 내가 아니 가서는 자시지 마소. 꿀과 참기름은 반잔씩 한데 달여서 아기가 돈 후에 자시게 하소.…산기가 시작되자마자 부디 부디 즉시 즉시 사람을 보내소.…비록 딸을 또 낳아도 절대로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자네 몸이 편하면 되지 아들은 관계치 마소. [곽주가 하씨에게]

7) 아우들 먼 곳으로 혼인하지 마십시오
경주로 출가한 맏딸은 편지를 통해 친정어머니 하씨에게 동생들은 나처럼 먼 곳으로 출가시키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편지에서 드러난다.

○ 무슨 죄를 전생에 짓고 제사도 함께 못 볼까하며 생각하니 더욱 망극하여 눈물을 금치 못하옵니다.…혼인은 언제 어디로 하시려 의논하십니까. 몰라서 답답합니다. 먼 곳으로 의논하지는 마십시오.…
○ 남편은 제가 친정에 못가도 울고 가도 울고 하니 다시는 못 갈 것이라고 합니다.
○ 오라버님과 동생들은 다 편하신지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민망합니다. 길이 매우 멀어서 이토록 소식을 듣지 못해 민망하오니 절대로 먼 곳에 혼인시키지 마옵소서. 서럽습니다.
○ 저의 소원으로는 사위를 먼 데서 보지 마시고 며느리도 먼 데서 보지 마옵소서. 사는 곳이 가까우면 이토록 이러할까…
○ 하룻길 바깥의 혼인은 제가 원하건대 하지 마십시오. 나처럼 고단하지 않아야 하거니와 매사를 뜻대로 못하여 서럽습니다.

8) 이 편지들을 관 속에 넣으시게
‘현풍곽씨 언간’ 172매 중 문장은 가장 짧지만 여백의 무게가 크게 느껴지는 편지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편지가 아닌 일종의 작업지시서다. 이 작업지시서 한 줄 덕분에 400년 전 우리 고장을 살다간 이들의 편지가 우리에게 전달된 셈이다. 하씨 부인의 네 아들 중 누군가가 지시했을 것인데 과연 누구였을까?

(이 편지들을) 소렴한 송장 밖에 놓아, 염하는 관 속에 넣으시게.

9) 에필로그
1989년 이장된 진주 하씨 유해는 선산이 있는 구지면 모정의 곽주와 초취 부인 광주 이씨 묘에 합장되었다가 이후 구지공단 조성으로 또 다시 고령으로 이장됐다. 현재는 곽주·광주 이씨·진주 하씨가 한 봉분 내에 함께 모셔져 있다. 참고로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이름난 곽주의 2남 곽의창과 3남 곽유창은 조정으로부터 효자정려를 받은 인물이다. 현풍곽씨12정려각 내 ‘양별검공 정려’가 그것이다.
[참고문헌 : 현풍곽씨언간 주해(백두현)]

송은석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e-mail: 3169179@hanmail.net